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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박 15일의 시간. 남섬에서 10박 11일, 북섬에서 4박 5일.
그리고 남은 총 92.7Gb의 11,858개의 사진과 영상. 

젊어서 사서 하는 것이 고생이라면, 뉴질랜드의 캠퍼밴 여행이 딱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시간과 돈이 없었다면 (그래서 파산여행이라고도 불렀다) 시작하지 못했을 이 여행은 엄청난 경험과 결과물을 남겼고
뉴질랜드를 돌아오고 글을 한편이라도 쓰고 남았을 시간임에도 쉽게 시작하지 못할 버거움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몇 글자 남겨본다.
폴더 가득 찬 사진 중에서 딱히 괘념치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끄집어 내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핀이 나갔지만, 무언가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아 가장 처음 끄집어냈던 이 사진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말이다.



첫째 날, 뉴질랜드에 입성하다. (크라이스트처치 - 테카포 호수)

생각해보면 참 대책 없는 사람들이었다.
뉴질랜드에 가겠다고 정한 순간부터 꽤 시간이 있었음에도 계획은 전혀 짜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이었으니.
15일 동안의 일정을 하나하나 다 짜기에는 '가보지 않은 여행지는 난 몰라'의 공감각 상실형인 나와
'짜려면 완벽하게 초, 분, 시간! 아니면 말고'의 초 완벽주의인 우쿠는 결국 계획 없이 일단 출발부터 하고 본 것.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한 그때부터서야 자료를 모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과연 이 여행은 제대로 끝날 수 있을까란 의문을 한편에 두고서.

▲ 우리가 여행을 막무가내로 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좋은 자료를 너무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

▲ 뉴질랜드 여행의 서막을 알리는 양 떼. 그 후에 또 양.. 양.. 양...



둘째 날, 뉴질랜드의 자연을 만나다 (테카포 호수 - 푸카키 호수 - 마운트쿡 - 오아마루)

하루 5달러(NZD 뉴질랜드 달러)만 내는 무인 캠핑그라운드에서 긴장되는 첫 밤을 보낸 후 시작한 본격 여행.
테카포 호수를 지나 푸카키가 눈 앞에 펼쳐졌을 때 나는 그 어떤 감탄사로도 표현을 못 할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호수의 빛깔이 이런 색을 띨 수도 있구나, 저 멀리 보이는 설산雪山과 하늘이 이렇게 어울리는구나..
나는 눈에 들어오는 그 모든 것에 감탄했다.

▲ 도로 끝에서 푸카키 호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순간 터지는 탄성!

▲ 눈바람이 부는 마운트 쿡에서의 가벼운 트래킹. 저 멀리 맞은편의 하늘은 너무나도 쾌청했다.



셋째 날, 삽질의 시간 (오아마루 - 더니든 - 모에라키 볼더스 - 인버카길)

나는 방향 치였다. 거기에 지도를 읽는 법을 잘 몰랐고. 계획도 제대로 짜지 못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뒤엉키는 순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더니든의 초입에 들어서서야 나는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동그란 돌덩이들(정식명칭은 모에라키 볼더스다)이
이미 한 시간 전에 지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밀려드는 좌절. 분노. 자책. 실망. 허탈.
더니든 구경을 적당히 마치고 차의 시동을 걸어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시 갈 것인가 그냥 포기할 것인가.
한참의 고민과 실랑이 끝에 우리는 출발했다. 왕복 두 시간의 되돌아가는 길로.

▲ 스코틀랜드 이주민이 많았던 더니든은 이런 멋진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 왕복 두 시간의 거리를 다시 달려가서 볼 수밖에 없었던 마력의 돌(?) 



넷째 날, 안개를 뚫고 만난 최고의 순간(인버카길 - 밀포드 사운드 - 테 아나우 - 퀸스타운) 

날씨 참 대단했다. 긴 여행이기에 늘 맑은 날만 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안 했지만, 하루에도 날씨가 몇 번이나 바뀌는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루 동안 이동하는 거리가 최소 300~500km는 되었기에 지역 간의 날씨 차가 나는 건 당연한가 싶기도.
거기에 날씨도 날씨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안개'였다. 아침 일찍 출발하고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 사이에서
바로 앞도 분간이 안 되는 짙은 안개는 사고 날까 무서워 엉금엉금 차를 몰 수밖에 없었다.

▲ 짙은 안개로 멋진 해안도로라고 선택한 길은 뭐가 보여야 말이지;;

▲ 밀포드 사운드는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눈으로 보는 것에 발끝도 못 미친다.



다섯째 날, 액티비티의 천국에서 만나는 황천길(퀸스타운 - 와나카) 

하늘에는 패러글라이딩, 강에는 수상스키. 산 중턱에서 타는 루지까지 퀸스타운은 말 그대로 액티비티의 천국이었다.
실제로 체험한 것은 곤돌라와 루지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꽤 재미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날.
그리고 본격 액티비티는 퀸스타운을 떠나 와나카로 향하는 산길에서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는데 
만화 이니셜 D나 영화 분노의 질주가 생각날 만큼 위험천만한 길 앞에서 정말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퀸즈타운의 전경

▲ 엄청나게 무서운 꼬부렁 길을 올라가다가 만나는 반지의 제왕길?!



여섯째 날, 빙하 위를 걷는 여행자(와나카 - 폭스글라시어) 

캐나다에서 우연하게 빙하 위를 걷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도 못 했던 뉴질랜드에서 빙하를 걸어보는 기회가 생길 줄이야! 와우!
여행에서 남는 아쉬움은 다음 여행에서의 기대감을 준다는 교훈을 이렇게 몸소 느낄 줄이야. 
요리보고 저리보던 둘리처럼 빙하 위를 걸어본 그 순간, 아~ 이 좋은 걸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네. 참 좋은데.

▲ 자연은 몇 색 크레파스를 가지고 있길래 이런 색깔을 만들어낼까.

▲ 빙하를 걸어보는 건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경험!



일곱째 날, 참 애매하고도 애매해(폭스 글라시어 - 호키티카 - 푸나카이키 - 그레이마우스) 

여행을 출발하고 거의 모든 하루가 기억에 남는 장소, 제일 좋은 장소를 남기곤 했는데
이 날의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뜻밖에 '호키티카'라는 작은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큰 규모도 책이 셀 수 없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어른과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은
와이파이를 이용하려고 짧은 시간 머문 곳이었음에도 꽤 근사한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물론 와이파이도 굿!

▲ 삼각 지붕 아래의 작은 도서관

▲ 흐린 하늘 아래 바다는 그 경계선마저도 흐렸다.



여덟째 날, 날씨를 돌려다오!(그레이마우스 - 아서스패스 - 아카로아) 

날씨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날. 
날씨가 좋아서 꿈처럼 느껴질 만큼 멋진 장관의 연속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당연히 제법 된다.
뉴질랜드 일정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미미(?)했다고 볼 수도 있는 날이지만,
안개와 꼬불꼬불 오르막길은 여전히 발끝까지 힘을 주며 긴장하게 만들 수밖에 없게 한 요소.


▲ 가이드북의 사진을 보며 한 기대감을 무색하게 만드는 날씨

▲ 동굴 안을 구경하기엔 강물이 너무 불어난 상태였다



아홉째 날, 다시 돌아온 크라이스트 처치(아카로아 - 크라이스트처치) 

남섬의 반을 뱅글 돌고 다시 출발지인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왔다. 
출발할 때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한 거라곤 장을 보는 것밖에 없었기에 이번엔 시간을 내어 느긋하게 둘러봤다.
2011년 지진 이후로 무너진 건물들이 한창 복구 중이었던지라 가이드북에 소개된 사진의 모습과 달랐지만,
여기저기 곳곳에서 사람들이 남겨놓은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가다 보니 짠한 기분이 들었다.

▲ 아침 햇살이 좋아 기분을 행복하게 한 작은 마을

▲ 무너진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열째 날, 별이 빛나는 밤에(크라이스트처치 - 카이코우라 - 픽턴) 

이 전에 타던 차는 2인이 딱 머물기 좋은 밴이었는데 이날부터 4인이 머물 수 있는 커다란 캠퍼밴으로 바꾸었다.
이전과는 달리 차량 안에는 제대로 된 주방이 갖추어져 있었기에 홀리데이 파크에 가지 않아도 편히 요리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이날은 화장실밖에 없는 저렴한 캠핑 그라운드에서 머물렀는데, 그 불편함을 덜 수 있었던 것도 넓어진 캠핑밴의 덕분이었다.

▲ 이번 여행의 좋은 동반자가 되었던 Jucy

▲ 이 마을에서 먹은 킹크랩은 비싼 만큼 맛있었다!



열한째 날, 남섬에서 배를 타고 북섬으로(픽턴 - 웰링턴) 

남섬의 픽턴에서 배를 타고 세 시간 정도 가면 북섬에 도착한다.
크루즈에서도 풍경 담기에 여념이 없을 줄 알았더니(?) 여행의 묵은 피로들이 쌓여서인지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픽턴이 조그만 어촌 마을의 느낌이었다면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수도답게 커다란 항구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해지는 웰링턴의 반짝이는 야경을 보며 남은 북섬에서의 일정을 기대해봤다. 

▲ 조용한 마을 픽턴에서 시작한 기분 좋은 하루

▲ 훈남 책방 주인은 영화 노팅힐을 떠오르게 했다



열둘째 날, 몰아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다(웰링턴 - 해이스팅스) 

뉴질랜드 여행을 하면서 생각보다 노숙하는 날은 그다지 없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지마는.)
그렇지만 홀리데이 파크에 머무는 것보다 무료 혹은 유료의 캠핑 그라운드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 것도 사실.
혹스베이는 그런 곳 중에서 하나로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계획 없던 곳이었음에도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
캠핑밴에 누워서 저 멀리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무섭다가도 황홀한 그 기분은 잊혀지지 않는 밤을 선사했다.

▲ 그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건 여행에 빠져서는 안 될 코스!

▲ 지는 해와 밀려드는 파도,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완벽했던 곳



열셋째 날, 용기있는 자 뛰어들어라(해스팅스 - 타우포 - 로토루아) 

뉴질랜드의 액티비티 중에 손꼽는 것이 바로 번지점프. '세계최초' '세계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번지점프의 본고장이지만,
막상 뛰어내릴 만큼의 용기가 나질 않아 다른 이들의 점프 장면을 보면서 혼자서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호주에서도 스카이다이빙을 못해본 게 나름의 아쉬움인데 번지점프도 추가해야 할 듯.
조금 더 내게도 깜짝깜짝 놀라지 않는 강철같은 심장이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날이었다.


▲ 강바닥이 보이는 번지점프대 위에 서면 무슨 생각이 들까? 

▲ 곳곳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온천마을 로토루아



열넷째 날, 숙취로 고생하는 간헐천씨(로토루아 - 파에로아 - 오클랜드) 

로토루아에서의 일정이 조금 더 길어진 것은 하루에 한 번 볼 수 있는 분출하는 간헐천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화산이 폭발하듯 그냥 뻥!하고 끝나는 것이었는데 30분 내내 이 간헐천은 어제 먹은 걸 확인하듯(?)
뿜어내고 뿜어내고 보다가 지쳐 그냥 돌아설 때까지 계속 뿜어내어서 당황스러웠다. (뭔가 나중엔 안쓰럽기까지.)

▲ 작지만 임팩트 있는 레이디 녹스 가이저(출동!)

▲ 로토루아에서부터 오클랜드까지의 길은 조금 지루하다.



열다섯째 날, 오클랜드에서 보내는 뉴질랜드 여행의 끝(오클랜드)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자, 아쉬운 마음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과 그 아래의 양, 푸른 바다와 그 아래의 요트들.. 오클랜드에서의 여유로운 마지막 날을 즐기다 보니
한국으로 가는 날을 조금 더 미루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행의 중간엔 지친 마음에 한국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기도 하지.
막상 떠나는 순간이 되니까 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 하룻밤 머물렀으면 엄청나게 좋았을 오클랜드 근교의 동물 농장

▲ 인구당 요트 보유율이 높은 오클랜드다운 풍경


프롤로그를 적어 내려가는 것도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
제일 좋은 사진들을 한 장씩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보이는 대로 꺼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음에도
15일 동안의 이야기가 잔뜩 쌓여 있어서 프롤로그에 일일이 다 소개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이 여행은 분명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재미있으리라.
모 CF의 카피처럼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은 정말 여행의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게 한 순간들의 연속이었기에
무릎 탁! 치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 그래,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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