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이들은 빛난다 :: CJ 도너스캠프와 함께하는 재능기부

반응형



아이들은 빛난다!
CJ 도너스캠프와 함께하는 재능기부


1997년 IMF 사태를 기점으로 우리 집의 형편은 정말 사정없이 곤두박질쳤다.
그 당시 망한 집이 어디 한 두 집이 아니었겠지만, 그 상황을 이해하기에 나는 어렸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학교에서 급식지원이란 걸 받게 되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그건 친구들에게 엄청나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되어서
선생님이 나를 부른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려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가 가진 그 트라우마로 오늘 만날 친구들을 봤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하는 행동 하나, 말 하나가 어린 친구들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레 걱정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얼 말하면 되는 걸까.
아직도 그 당시 같은 반이던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 하나까지 상처로 기억하고 있던 나이기에
쉽게 참여할 수 없는 기회라 냉큼 손은 들었지만,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다.

아이들을 만나고 조그만 손끝에서 야무지게, 개성 있게, 신 나게,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작품들을 보면서
나의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은 빛났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말이다. 




2일에 걸쳐 찾아간 곳은 의정부에 있는 '나눔 공부방'과 성남에 있는 '우리 공부방'이다.
'결손가정 및 저소득층 자녀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곳'이란 표현으로 이 공부방을 설명하기엔 조금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곳을 통해서 다양한 이유로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모여 놀고 공부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눔 공부방과 우리 공부방 두 곳 모두 약 30여 명이 되는 친구들이 이번 수업에 참여했는데
그 외에도 시험공부를 하느라 바쁜 친구들을 제외하면 공부방에는 굉장히 많은 친구들이 상주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공부방 앞에 붙은 인원이 초과되었다는 글이 눈에 띄었던 건 그래서였다.

혹시나 싶어 담당하는 선생님께 물어보니 이렇게 붙여놓았는데도 참아오는 부모님들이 많아서
막상 얼굴 보면서 돌려보낼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엔 이미 많은 아이가 있어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생각보다 더 많은 아이가 어딘가에서 혼자 있을지도 모른다.




DAY 1. 디자인한스푼님과 함께하는 캘리그라피 재능기부

첫째 날인 의정부 나눔 공부방에서 진행된 것은 블로거 '디자인한스푼(이하 한스푼)'님이 준비한 '캘리그라피'수업이다.
우리에게 캘리그라피는 굉장히 익숙한 단어지만, 어린 친구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한스푼님은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큰 언니같은 느낌으로 상당히 조근조근 아이들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평소 캘리그라피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기에 그 강의는 더욱 흥미롭게 들리기도 했다.

캘리그라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씨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었고, 한스푼님이 어린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도
쓰고 싶은 말을 여러분의 감정을 넣어서 편하게 써 보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한스푼님이 준비한 도구는 펜과 글을 쓸 종이판과 부채, 그리고 꾸미길 좋아할 친구들을 위한 스티커들.
붓을 준비하기엔 나이 어린 친구들도 많고 그 과정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붓펜으로 준비했다는 꼼꼼한 배려까지.
나도 붓펜을 하나 받아서 혼자서 끄적끄적 써 보면서 생각보다 어렵구나 느꼈는데 어린 친구들은 어찌나 잘 쓰는지.




자신의 이름을 쓰는 걸로 간단히 붓펜과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것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스푼님은 아이들이 쓰는 거 하나하나 도움을 줘가면서 봐 주고 아이들은 눈앞에서 쓰여지는 글자에 감탄하고.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에 빠진 내게 어찌 쓰냐며 물어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친구들이 더 잘하는 듯한.




무얼 쓰면 좋을까 고민하던 친구들은 자신의 글에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노래 가사부터 인생의 신조까지 다양했다.
그 문장들을 보다가 감동을 받기도 하고 빵 터지며 웃기도 하고.
특히 연습하는 이면지 가득 배고프다고 쓰는 남자아이의 글은 축구감독 히딩크의 말을 쓴 것인가 했더니
짝꿍의 이야기를 들어도 늘 배고프다고 입에 달고 다니며 많이 먹는다고.

"지금도 배고파?"
"네, 전 항상 배고파요."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 남자아이가 그리던 왼쪽 위의 '새'는 알고보니 '냄비'였다.

한편 글쓰기보다 그림에 재능을 보이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색연필을 꺼내와 색까지 칠하는 열정. 굉장히 세심하게 표현하는 모습에 나이를 물어보니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
그림 정말 잘 그린다며 칭찬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 재능이 더 꽃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얼 그리는지 알 수 없는 상당히 인상파적인 그림을 그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새 예쁘다.?"
"새 아니에요. 냄비예요."
"냄비?"
"네, 냄비."




나도 어린 시절엔 꽤 글짓기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이 친구들은 그를 훨씬 넘는 실력이란 생각이.
도대체 이런 명문장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이 아이들에겐 생각보다 더 많은 감성주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건 시련이나 행복, 기쁨, 고난이란 것도 온다. 그걸 이겨내는 사람만이 인생은 살 자격이 있다."
"꿈이 있는 달팽이 거대한 야채 밭을 찾아 여행을 떠나다."




두 시간 남짓 되는 시간을 꽉 채우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한 곳에 주르륵 나열해놓고 감상을 했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글씨들이 바닥을 가득 채워지고 이것 자체로도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자신의 작품에 열을 올리던 아이들도 다른 친구들이 만든 것을 보며 감탄하고 웃어가며 캘리그라피 수업이 끝났다.




DAY 2. 딸기소보루님과 함께하는 클레이 재능기부

둘째 날에 성남 우리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것은 '딸기소보루(이하 딸소)'님의 '클레이' 수업.
어렸을 적에 만져본 지점토 이후로 이런 미술 시간은 거의 처음인지라 상당히 흥미롭게 들었다.
오늘은 자신의 방에 걸 방문패를 만들어보기로 했는데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잘 따라 할 수 있을까 우려한 것과 달리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만들어서 그 열정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연신 선생님을 불러대는 통에 정신없었을 텐데도 연인 웃음 띤 얼굴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던 
딸소님의 배려 또한 참 좋았던 시간.




준비물은 빨간색, 하얀색, 검은색, 노란색, 파란색의 컬러클레이와 스티로폼재질처럼 느껴지던 폼클레이.
실제로 클레이를 만져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그 촉감이 참 반가워 즐거웠다.
특히 폼클레이라고 불리는 알갱이가 있는 클레이는 낫토 같은 쫀득한 점성이 있어서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런 재료는 비싸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딸소님께 물으니 그렇지도 않다고 하여 다음에 혼자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방문패를 만드는 과정은 일단 폼클레이로 밑판을 깔고 그 위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넣고 이름을 적는 과정인데
아이들은 늘 예상과는 다른 시점을 가지고 있어선지 다양한 질문을 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갔다.
네모로 만들어도 되는지, 엄마 얼굴로 만들어도 되는지, 나무를 만들어도 되는지 등..




얼굴의 피부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였다. 하얀색을 많이, 빨간색과 노란색을 조금씩 섞어 반죽하듯 주무르면
어느색 피부색 컬러 클레이가 만들어진다. 하늘색은 흰색과 파란색, 분홍색은 흰색과 빨간색, 갈색은 검은색과 빨간색을 이용해서.
다섯 가지 색으로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다양한 색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색을 만들어보는 것도 아이들에겐 즐거운 일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을 연신 부르며 하나하나 물어보기 바빴던 어린 친구들도 얼굴을 만들 때 집중상태로 바뀐다.
눈과 코, 입을 만들 땐 조심스럽게 도구를 이용하면서 머리카락도 일일이 손으로 모양을 내어가며
하나하나 내게 확인해가며 어떠냐고 물어오는 그 모습에서 작은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보다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고 어느새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분주한 마무리를 끝내놓고서 아이들의 작품을 둘러보니 어느 하나 똑같은 모양이 없는 다양함이 느껴졌다.
딸소님이 준비한 동그란 문패와 달리 사람 모양, 하트모양, 네모난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얼굴 표현도 하나같이 다르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얼마나 개성 있고 재미있는지. 규칙이 없어도 아이들의 생각은 고스란히 작품으로 다양하게 드러난다.




방에 걸기 위한 끝까지 다 마무리를 짓고 나서 만든 작품을 한곳에 모았다.
아이들이 클레이를 처음 만져 본 그때만큼 키득거리며 웃기 바쁘다.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는 모양.
누구는 닮았네 누구는 안 닮았네 하는 자기들만의 품평을 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누굴 1등으로 뽑고 꼴등으로 뽑는지가 중요한 시간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진지했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해냈다. 한스푼님도 딸소님도 그 반짝이는 창의력에 감탄했고.
상을 줘야 한다면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모두에게 줘야 할 것 같았다.
'함께'하고 있기에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캘리그라피도 클레이 수업도 좋았던 건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어째서?라고 의구심을 가질만한 것이 누군가에겐 최고로 손꼽힐 수 있고 
각자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 만들었기에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생각과 능력은 '정답'이 없다. 
그것을 환경적인 요인으로 판단하거나 어른들의 눈으로 잣대를 지어버리는 것은 무식한 일이지도 모르는 거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도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걸 발견하고 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니던가.




"이거 내가 만든거예요."

클레이 수업까지 잘 끝내고 집으로 가려고 준비하는데
시작할 때부터 '선생님은 우리 전담' 이라고 말했던 남자아이가 사물함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날 불렀다.
슬며시 내게 쥐여 주는 건 자신이 만든 오리 모양 상자. 
수업 내내 조잘거리던, 개구지던, 자신감 넘치던 그 녀석이 유일하게 수줍은 표정으로 내민 이 선물에
나는 감격했다. 진심으로 고마웠고 반성했다.

지난날의 모든 말이 다 상처같이 느껴지던 그 순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 아이들은 이렇게도 사랑스럽게 빛나지 않는가!


캘리그라피 수업은? 블로거 디자인한스푼(http://letter001.blog.me/)
한스푼님은 조근조근 예쁘게 말하는 말솜씨와 남을 크게 칭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신 분이었다.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많아 처음 뵙는데 이런저런 귀찮을 수도 있는 질문을 여러 가지 던졌음에도
어찌나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던지. 현재 강남구청에서 캘리그라피 강좌를 시작하셨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클레이 수업은? 블로거 딸기소보루(http://blog.naver.com/rhksgn/)
남자분의 닉네임치고는 여성미가 물씬 느껴진다 생각했더니 나름의 이유가 있더라는.
그러나 닉네임만큼이나 달달한 외모, 달달한 성격을 가진 착한 분이었다.(후훗)
제빵으로 시작된 취미생활이 클레이로 이어졌고 지금은 책도 내신 어엿한 전문가! 관심 있는 분들은 역시 참고!

이번 행사는? CJ 도너스 캠프(http://www.donorscamp.org/)
소외된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 나눔터」입니다.「쉽고 즐거운 나눔」을 모토로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단체.
예전에 김장행사에 참여하면서 그 이름을 처음 알았다. (http://sinnanjyou.tistory.com/41)



Imag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