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희망은 이렇게 눈물이 난다 ::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반응형



희망은 이렇게 눈물이 난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mancha)


글을 쓰려고 CD를 꺼내 들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선물로 받은 맨 오브 라만차 음반은 안타깝게도 브로드웨이 캐스트로 레코딩 된 것.
그래도 음악을 들으면 그 날 봤던 그 순간의 기억과 감동이 떠올라 다시금 벅차오르고.
나는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고민한다.

감동이 클수록, 많은 것을 느꼈을수록 글쓰기는 참으로 힘들다.
멋지게 써내려 갈 글재주가 없음을 아쉬워하고 이 벅찬 기분을 몇 줄로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참 어렵다.
맨 오브 라만차. 이 뮤지컬을 나는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까.
그저 한 가지 확실한 건 주인공 돈키호테가 노래하는 꿈과 희망이 와 닿아 눈물이 절로 났던 것뿐.

 




맨 오브 라만차 공연이 있는 
충무아트홀에는 드림캐스팅으로 불리는 돈키호테의 두 주인공의 사진이 걸렸다.
정성화와 조승우. 그 이름만으로도 이런 규모의 뮤지컬인 처음인 나조차도 충분히 기대되는 인물들이 아닌가.
이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그 이름 제대로 새긴 조승우, 그리고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올해 뮤지컬 대상을 차지한 정성화.
그 어느 쪽의 공연을 봐도 이건 멋질 것이 틀림없었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를 이야기하다,

그렇다면 돈키호테가 주인공인 '맨 오브 라만차'는 무슨 내용이란 말인가.
돈키호테란 이름만 들으면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엉뚱한 노인네'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었는데,
소설 돈키호테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뮤지컬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라만차에 살고있는 알론조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고 착각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찾아 떠난다.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며 달려들지 않나 여관을 성이라고 찾아가서는
하녀인 알돈자를 아름다운 여인 돌시네아라고 칭하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그의 이상한 행동을 단순히 미친 것으로만 간주하던 알돈자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지만, 이내 노새끌이에게 처참히 짓밟히고 만다.
다음 날 엉망이 된 알돈자를 발견한 돈키호테는 여전히 그녀를 돌시네아라고 부르지만,
이미 절망에 빠진 그녀는 자신은 그저 더러운 창녀일 뿐이라고 울부짖는다.

알돈자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돈키호테 앞에 거울의 기사가 결투를 청해오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알론조는 기사가 아닌 그저 노인에 불과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쓰러진다.




맨 오브 라만차는 이러한 스토리를 가진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바탕으로
연출가인 데일 와써만의 '작가인 세르반테스가 곧 돈키호테이지 않을까' 라는 상상력이 더해져 
세르반테스가 신을 모독한 죄로 종교재판을 앞두고 스페인의 어느 감옥에 갇히게 되고 자신이 오게 된 이유를
죄수들에게 극으로 설명하는 형식을 더해 재구성하여 만든 뮤지컬이다.




1965년 뉴욕에서 초연된 이후 반세기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브로드웨이 명작 뮤지컬이지만,
사실 개막전까지만 하더라도 전문가를 비롯하여 관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첫 공연 이후 엄청난 입소문을 타며 최고의 뮤지컬이란 호평을 이끌어 낸 것.

소극장인 아닌 3층까지 좌석이 빽빽한 대극장에서의 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이었던지라
얼마나 재미있을지 어떤 내용일지 거기에 늘 보고 싶었던 그 배우(!!)의 연기로 만나는 뮤지컬인지라
정말 들어갈 땐 들뜬 기분에 정신이 없었다.



 참고 영상 : 뮤지컬 영웅 '누가 죄인인가' 중에서

정성화, 돈키호테를 이야기하다,

나를 들뜨게 만든 오늘 공연의 돈키호테역은 정성화였다.
사실 개인적으론 정성화 배우님의 연기가 보고 싶었던 마음이 늘 있었기에 좋은 기회이다 싶었다. 
(조배우님 미안;ㅁ; 곧 하는 드라마부터 우선 기다릴게요.) 

개그맨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가 드라마 '카이스트'를 통해서 얼굴을 비추고 어느 순간 TV에서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을 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의아한 이야기였다. 뮤지컬?
그리고 우연하게 그가 주인공 안중근을 연기한 뮤지컬 '영웅'의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고 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
정말 그는 멋진 뮤지컬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내가 감히 성장이란 표현을 써도 될까 싶을 정도로.




그런 그의 연기를 실제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던가.
거기에 이 뮤지컬을 이끌어 가는 메인 캐릭터인 알돈자와 산초 역은 각각 이영미와 정상훈이 맡았다.

알돈자는 어떤 역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공연을 봤다가 고초를 많이 겪는 모습에
이영미 배우님의 연기력이 더해지니 어찌나 구슬프던지. 
2막에서 그녀가 노새끌이들에게 짓밟히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부터 복받치던 슬픔은
돈키호테에게 자신을 그만 돌시네아라고 부르는 절규하는 장면에서 폭발했다.

그에 반해 산초 역의 정상훈 배우님은 굉장히 낯익은 인물, 시트콤 '나 어때(이거 나만 기억하나?)'로 데뷔한 그는
최근 SNL코리아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실제론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었다니 이건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역시 뮤지컬 배우로 꾸준히 실력을 다져온지라
앞으로도 이런 귀엽고 개구진 산초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뮤지컬은 장르의 특성상 적은 인원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표현을 해야 하는 일인지라
이번 공연은 어떤 식으로 연출이 될지 상당히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스페인의 어느 지하 감옥이 해바라기로 가득 찬 언덕으로 변하고, 작은 교회로 변했다가 여관으로 바뀌는 등
장면에 맞추어 시시각각 바뀌는 배경의 변화, 거기에 체스판에 말에 비유하여 배우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거울의 기사들이 등장한 부분의 연출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재미다.




돈키호테,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다,

극으로 돌아와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자면 둘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듯 하다.
세르반테스가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 돈키호테라고 하기엔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았으니 어쩌면 세르반테스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돈키호테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이 이루고픈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 아니던가.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공감을 사기에 어려운 일이며 어줍잖은 위로는 오히려 반발심만을 일으키는.
미치광이 늙은이가 벌이는 '꿈과 희망'의 모든 행동은 각박한 현실에서는 그저 '미친 짓'에 불과한 일로 치부되는 이유도
어쩌면 '현실도피'나 '현실망각'쯤으로 인식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돈키호테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잔뜩 희망만 안겨준 채 알돈자를 떠난 그 순간, 그녀가 겪은 세상에서 가장 죽고 싶을 만큼의 치욕스런 일.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은 오히려 더 큰 절망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왔고
그 순간마저도 그저 아름다운 돌시네아로밖에 보지 못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화가 났던 것.

현실은 이렇게나 각박한데 아무리 꿈을 가져라 한들 희망을 가져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그 희망들이 이렇게 오히려 좌절과 절망만을 안겨주지 않는가.
현실을 깨닫고 쓰러지는 돈키호테만큼 끔찍하고 좌절됨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지. 
침대에 누워 모든 것을 잊고 죽어가는 돈키호테를 보는 것은 그보다 더욱 절망스럽다.
다시금 꿈을, 희망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천 번을 치더라도 다시 천 번을 일어나겠다던 그가 돌아오길,
그렇게 알돈자의 목소리를 통해 돈키호테로 돌아와 달라고 빌어본다. 이루지 못한 그 꿈을 기억해내줘요, 돈키호테.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가네, 저 별을 향하여 쉽게 닿을 수 없어도 온 맘 다하여 나아가리 영원히 저 별을 향하여!"




극은 종교재판을 받으러 가는 세르반테스와 산초의 모습, 그리고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죄수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노래하며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모습이야말로 뮤지컬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런 죄수들을 바라보다 이윽고 결의에 찬 얼굴로 감옥의 계단을 향하는 그들의 모습을 끝으로 뮤지컬이 끝난다.
그와 동시에 나를 비롯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건 그들이 이야기하는 희망을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꿈만을 쫓는다는 것은 헛된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마저 없이 살아간다면 이 얼마나 세상은 정말 재미없고 죽어 있는 것만 같을지도 모른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짜증나는 현실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그럼에도 나의 구석 어딘가에서 희망을 기대하고 꿈을 꾸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룰 수 없는 꿈이더라도 끝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돈키호테가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이렇게 또 한 번 깨닫기에 오늘도 현실에 안주하고자 한 나에 대한 모든 감정이 터져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쩜 이렇게 희망은 이렇게 눈물이 나는 일인가. 그래도 다시 한 번 가져본다, 이 꿈을.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잡을 수 없는 것일지라도 손을 뻗어볼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라만차의 기사니까.



오늘의 포스팅 요약 : 뮤지컬 정말 좋아요. 직접 보세요 ;ㅁ; 사랑해요 정정(정성화+정상훈)♡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
출연진 : 정성화 조승우 김선영 이영미 정상훈 이훈진 서영주 외
공연장 : 충무아트홀 대극장 http://www.cmah.or.kr/
공연기간 : 2013년 11월 19일 ~ 2014년 2월 9일
공연시간 : 화, 수, 목, 금 8시 / 토 3시, 7시 30분 / 일, 공휴일 2시, 6시 30분(월요일 공연없음)
관람연령 : 중학생 이상 관람가
관람시간 : 2시간 50분(인터미션 포함)


※주의 :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은 관련 회사에, 영상은 올린이에게 있음을 명시합니다.


Imag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