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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재스퍼 마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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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재스퍼를 걷다
캐나다 재스퍼 어느 아침 풍경의 기록


분명 시차가 있었음에도 캐나다 여행을 하는 동안 늘 아침 일찍 깨곤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눈을 뜨고 나면 침대에 누워 말똥말똥한 눈으로 '여기는 한국이 아니지..'란 생각을 며칠 동안.. 그러다 다시 잠들거나 아니면 하루의 일정을 확인해 본다거나.

재스퍼에 도착하고 나서도 분명 그랬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곤 천장을 바라보며 말똥말똥. 그렇지만 날은 거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부지런 떨며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재스퍼의 작은 마을의 아침 풍경이 문득 궁금해져 특별한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연일 흐린 날씨만 계속되는 캐나다에서 '무언가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의무감도 들었기 때문.



재스퍼에서 2일동안 머물렀던 토쿠인(Tonquin Inn)


눈 쌓인 재스퍼의 마을 풍경

캐나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맑았던 날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이날도 역시나 해는 뜨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멋진 캐나다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계속 따라다녔지만, 그렇다고 실망만 하고 있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숙소 입구에 있던 식당에서는 숙박객을 위한 아침을 준비하는 듯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 빨리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마을로 향했다.



 아름다운 마을, 재스퍼


캐나다 알버타주 재스퍼(Jasper). 위스퍼(whisper)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발음 덕분인지 이 마을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느낌보단 속삭이듯 고요하단 느낌을 받는 작은 마을이다. 옆 동네(?) 밴프와 비교해도 더없이 조용한 마을. 그래서 관광지라는 느낌보다는 여행을 하다 우연히 쉬어가는 마을이란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조깅하는 그녀


제법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도 이곳의 아침은 부지런하게 흘러갔다. 누군가는 조깅을 했고, 개와 함께 산책했다. 어느 집 굴뚝에서는 아침을 준비하는 연기가 폴폴 올라오고. 참으로 고요한 풍경이었다. 



 아침부터 깨끗하게 눈을 치워두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이 마을을 둘러보면서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이 아침을 기록하리라 마음먹었다. 화려한 볼거리나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는 이 작은 마을의 아침 풍경이 왜 이리도 인상적이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캐나다 여행을 시작하고 다양한 볼거리와 액티비티로 정말 즐거웠다. 그러나 나는 이 고요한 풍경이 가장 캐나다에서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담 너머로 슬쩍 훔쳐본 귀여운 새집


소복하게 쌓인 눈이 근사한 곳. 조용하게 시간이 흐르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흡사 동화 속에서만 볼듯한 마을의 풍경은 실제 현실은 어떠할지 몰라도 내겐 무척이나 특별했다. 정말 사랑스러운 마을이 아닐 수가 없었으니까.



 하얀 눈과 까만 고양이의 만남


낮은 담 너머로 눈 쌓인 정원 하나하나를 구경하는 작은 동양인. 그 날 아침 누군가 나를 봤다면 이상하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산책은 다행히 그런 시선 하나 없이 자유롭게 남의 집 정원을 구경할 수 있는 기쁨을 주었으니. 문득 낯선 이방인의 발걸음 소리를 느낀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절대 들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 넌 뭐냐.
- 안..녕;



 사뿐하게 눈에 도장 찍고 사라진 고양이


손가락 끝에 몇 번 몸을 부비던 고양이가 떠나고 다시 조용한 산책이 이어졌다. 마을 골목 골목으로 난 길을 다 가 볼까 하다가 아침에 가이드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어느새 가까워졌단 생각이 들어 돌아가기로 했다.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이왕 시작한 산책 새로운 길을 선택해 숙소로 가는 것이 나을 듯했다.



 쉬어가는 이를 배려한 벤치

길가에서 발견한 마음이 담긴 벤치

숙소로 돌아가는 큰 길가에 눈 쌓인 벤치가 하나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슬쩍 보이는 무언가. 분명 정신없이 스쳐 지났으면 그렇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이 벤치도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어머지는 아들을 기억한다

In memory of GERALD JONATHON ALBERT
June 20, 1967 - Aug 28. 1997
Gerald loved skiing, cars, motorcycles, his two pet cats, and Garfield comics.
Earth hath no sorrow That Heaven cannot heal.
-Mom

쌓인 눈을 털어내니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짧은 영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에 담긴 깊은 이야기까진 알 수 없어도 적어도 이 벤치가 아들을 기억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것이란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스키와, 자동차, 오토바이, 2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가필드 만화를 좋아하는 그녀의 아들 제럴드. 엄마는 이렇게나마 아들을 기억하고자 했고,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침 산책을 즐기던 내게 코끝 찡긋해지는 여행의 추억을 남기게 했다.



 눈에 미끌어지지 않도록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오는 길. 행여 숙박객들이 미끄러질까 싶어 직원이 나와 염화나트륨을 뿌리고 있었다. 이런 소소한 배려도 기분 좋은 아침,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기 시작하는 그런 날이었다. 생각대로 특별하고 소소했으며. 생각하지 못한 찡~한 감동을 남긴 아침 산책.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재스퍼를 걸었으면 좋겠지만,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걸어보는 걸로. 참으로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참. 이 날 결국 가이드님께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혼났다. 쩝.



덧붙이는 글.  어떤 내용을 쓰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그날의 풍경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자식을 잃는 슬픔이란 것은 아직 결혼도 아이도 없는 내게 어떤 느낌인지 막연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저 '슬프다' 이상으로 표현하지 못할 그 마음. 문득 캐나다 여행 중 발견했던 벤치 생각이 났던 것은 코끝 찡하게 만들던 벤치에 쓰인 몇몇 문장이 지금 상황과 겹쳐지는 면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희생자 혹은 실종자로 불리는 아이들 모두에게는 이름이 있고,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 캐나다 여행은 2013년 4월 3일부터 13일까지 9박 10일간의 여행기입니다.
캐나다 알버타주 관광청과 하나투어 트래블 웹진 겟어바웃의 지원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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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 Panasonic G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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