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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의 말할 수 있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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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쌓이면 비밀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쌓인 역사는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비밀을 만들어내고
그 비밀은 그것을 찾아내는 이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는
다니던 학교에도, 살던 마을에도 있던 꽤 그럴싸한 전설 같은 비밀 말이다.

그렇다면 125년간의 이야기가 쌓이면 어떤 비밀이 곳곳에 숨어있을까?
손을 뻗어 쓰다듬어 보는 돌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멋들어진 샹들리에,
넋을 잃게 하는 창문 너머의 풍경, 대리석 계단까지..
오늘은 발걸음 닿는 곳 하나하나에 그런 비밀이 있는 곳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은 박물관도 미술관도 아니다.
보는 순간부터 시선을 빼앗는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미술품이 되기도, 하나의 역사물이 되기도 하는 곳.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
이곳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말할 수 '있는' 비밀을 준비했다.




첫 번째 비밀.
호텔 나이보다 훨씬 더 오래된 그것의 정체!

자그마치 125년이다.
캐나다 밴프, 로키산맥의 멋진 풍경 안에 둘러 쌓여 보는 순간, '와!'하고 감탄사를 내뱉게 한 이 호텔 말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888년에 이런 호텔을 그것도 이런 장소에 만들었다니!
1888년이면 당연히 나는 태어나지 않았고,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100년 전이고,
내가 지금 나이가 되는 걸 4번은 더 반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코틀랜드의 성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말처럼, 
고성처럼 이어진 이 호텔의 매력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감탄사 '와!' 말곤 어찌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이것은 만들어내려고 해도 쉽사리 그러할 수 없는 '세월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인데




호텔의 외벽 돌 하나하나도 그리 짧은 나이가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밴프 동네 산 중 하나인 런들산에서 채석한 돌로 만들어진 이 벽의 나이가 125살..




호텔 안을 들어가는 순간 만나는 이 멋드러진 로비도 125살이란 말이 된다.

호텔의 로비 통로가 넓고 긴 이유가 그 당시 그들의 넓고 긴 옷을 배려했다는 이야기로 알 수 있듯
내가 체크인을 하는 이 로비는 125년 전, 영국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왕족과 귀족들로 가득 차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들도 분명 호텔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뱉을 수밖에 없는거다. "wow"




그럼 이 호텔의 첫 번째 비밀, 가장 오래된 그것은 정체는....
외벽의 돌? 프런트 데스크의 나무? 천장 위에 매달린 샹들리에? 아니면 지금은 공사 중인 연회실?




정답은 호텔의 대리석 계단!
이 계단의 나이는 짐작으로 추정해도 약 2만 살, 호텔에 있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나이가 많다.
물론 이 계단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니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이란 의심은 잠시 접어두길.
일단 잠시 계단을 자세히 뚫어라 볼 필요가 있다.
"어디 있드라.. 일단 여기! 그리고 여기!"




대리석 계단을 잘 살펴보면 군데군데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이것은
이게 바로 과학실에서 나무 상자에 넣어져 조심조심 만지곤 했던 '화석'이다.

화석이 이 호텔에 있게 된 그 놀라운 배경을 설명하려면 딱 두 가지만 알면 된다.
호텔을 만들 때 사용한 돌이나 나무는 밴프 주변에 있는 산을 이용했지만,
계단을 만들 대리석만은 캐나다의 중부지방 마니토바란 지역에서 가져왔다는 것!
그리고 이 마니토바라는 지역은 2만년 전 바다였기에 그 흔적이 남아 대리석에 이런 모양의 화석이 있다는 것!

이쯤 되면 이 계단을 밟고 올라서도 되는 건가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무 상자에 넣어 곱게 보관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두 번째 비밀.
 호텔에서 마릴린 먼로를 만나다

호텔의 역사가 길다 보니 그 자부심 또한 깊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 역사관으로
로비로 내려가는 대리석 계단 옆에 작게 만들어진 이 역사관엔 밴프 스프링스의 과거 사진들과
그 당시 사용했던 물건을 구경할 수 있다.




바위에 걸터앉은 숙녀의 다소곳한 포즈가 인상적인 이 사진을 보면, 초반에 지어진 호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의 호텔과 조금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처음 만들었을 때는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었기 때문.
이후 한 차례의 화재를 겪고 다시 재건한 것이 지금의 돌로 만들어진 호텔이다.




지금이야 길도 놓이고 차로 호텔까지 오는 것에 불편함이 전혀 없지만,
배로 몇 일 몇 날을 여행하고 마차로 이곳까지 여행 짐을 들고 올라왔을 과거 왕족과 귀족들의 이곳에 대한 사랑은
남겨진 사진 몇 장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듯하다.

(사진 속에서 옛날 호텔의 방문한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역사관의 또 하나 재미다.
잘 보면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남자는 원피스 수영복이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마릴린 먼로가 이 호텔의 VIP 중 의 VIP가 아닐는지.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찍기 위해 밴프를 찾은 그녀가 다리를 다치면서 호텔에서 머무는 기간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는 역사관에서 만난 골프채를 들고 있는 그녀의 한쪽 다리를 보니 붕대가 감겨있다.

유유자적 골프도 치고 수영도 하고. 이곳에서 보낸 휴양의 나날은 분명 그녀 인생에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에 감격했듯 말이다.




세 번째 비밀. 지어라 아저씨의 그림을 찾아서

이 호텔 중앙에 놓여 '저기에 지어라'라고 외치는 동상의 주인공이자, 그렇게 밴프 스프링스 호텔을 지은
윌리엄 코넬리우스 벤 혼(William Cornelius Van Horne 1843~1915)경은 이렇게 말했다.

"Since we can't export the scenery, We'll have to import the tourists." 
"만약 우리가 이 경치를 들고 나갈 수 없다면, 우리가 여행객들을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이 산에 그런 멋진 그림을 그려냈다는 그 식견에 놀랍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던 이 산에 결국은 호텔을 세운 그 능력이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어라 아저씨 벤 혼경이 투숙객을 위해 호텔에 숨겨놓은 비밀,
그것이 말할 수 있는 세 번째 비밀로 바로 호텔에 걸려있는 그림들이다.




복도에서 끝에서 발견한 그림. 보통 그림의 왼쪽 모서리에는 작가의 이름이 쓰여있기 마련.
이 그림은 ENROH NAV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으로 뒤에 숫자가 명확하게 보이질 않아서 언제 그린 그림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림을 그린 연도가 아닌 화가의 이름. 엔로 네브 ENROH NAV?
사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지어라 아저씨 벤혼VAN HORNE경이다.
농담으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는 이 그림의 비밀, 작가의 이름을 반대로 쓰면 알게 된다.
ENROH NAV - VAN HORNE

자신의 이름을 반대로 적어 그린 그림, 찾아내는 사람에는 꽤 재미있는 비밀이다.
참고로 호텔의 모든 그림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직접 그린 약 7점의 그림들이 그렇다고 하니
이걸 찾아내는 재미도 꽤 쏠쏠할 듯하다. 난 하나밖에 못 찾았지만.





네 번째 비밀. 조금 특별한 호텔 구조

다음 날 아침부터 일정이 빡빡했기에 호텔을 둘러 볼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첫째 날.
그래서인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호텔을 사뿐사뿐 둘러보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무언가 왔던 길을 또 돌고, 돌고, 도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늦은 밤인지라 프런트 데스크에는 직원이 없고 오고 가는 투숙객도 없기에 혼자서 몇 분을 뺑뺑 돌기만 하다가
겨우 엘리베이터를 발견하고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





물론! 내가 방향치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밴 프스프링스 호텔 구조가 조금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이유인즉슨 호텔을 처음 지을 때 방향이 지어라 아저씨의 계획과는 달리 인부들이 반대로 짓기 시작했기 때문.
그래서 짓던 호텔을 다시 원래 계획대로 반대로 수정하며 지으면서 호텔의 구조는 복잡해졌고
호텔 안의 멋진 모습에 넋을 잃고 걷다간 나처럼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돌게 된다.

벤 혼경의 고집 아닌 고집으로 아랫사람들은 고생했으리라 짐작되지만, 덕분에 이런 멋진 곳이 탄생하게 되었다.




다섯 번째 비밀. 미소가 친근한 호텔 대표 모델?

조금만 더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을 안고 체크아웃을 하는 날이 왔다. 
체크아웃이냐고 묻는 직원의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그런 날.
저 먼발치에 서서 호텔 사진이나 더 담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보는데 프런트 데스크 앞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호텔 멤버십 회원들을 안내하는 포스터인데 사진 속의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참 친근하다.
"가는 길 환하게 웃어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올게요. 오고 싶어요."

그런데 잘 보니 이 아저씨 뭔가 되게 익숙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뵈었을 리도 없고, 캐나다에 와서 만난 사람 중에 한 명이던가.
고개를 갸웃갸웃. 생각해보고 생각해봐도 잘 생각이 안 나는 그때,



만났다. 포스터 속의 그 사람.
어디서 봤든가 했더니, 호텔 처음 도착했을 때 차 주차를 도와주던 도어맨이 바로 사진 속의 인물!
체크아웃이냐며 차 열쇠를 챙겨주는 그에게 동행했던 가이드 분이 물었다.

"프런트 데스크 앞에 있는 포스터 속의 사람이..?"
"응, 나야.."

수줍게 웃는 그 모습이 포스터 속의 그 친근한 미소와 닮아 있는 걸 보니 확실히 그다.
여기서 일한 지 20년도 더 되었으니 사진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
한 곳에서 이렇게 길게 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짐을 옮겨주며 남은 여행 즐겁게 하라며 배웅해주는 그를 보니
문득 이 호텔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밴프 스프링스 호텔을 다시 찾게 되면,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 같기도. 




여섯 번째 비밀. 호텔 최고의 전망을 찾아서

마지막 비밀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 
전 세계에 있는 페어몬트 계열 호텔 중에서도 몇 번이고 최고로 뽑힌 밴프 스프링스를 느낄 수 있는 가장 멋진 전망에 관해서.
여행하는 동안 따라다닌 흐린 날씨도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곳, 
768개(2013년,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 기준)의 객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로키산맥의 멋진 산자락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그런 곳 말이다.




호텔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라보는 풍경? 아니면 아침 일찍 눈을 떠 동이 뜨기 전 바라보는 방에서 바라보는 창문 밖?
혼자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바라봤던 고요한 호텔의 야경?
사실 어딜 가도 멋지기만 한 밴프 스프링스지만, 역시 최고로 꼽는 전망은 호텔 안이 아닌 밖에서 만난다.




이미 글을 시작하는 가장 첫 사진으로 소개한 곳,
이곳이 바로 밴프 스프링스 호텔을 가장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로키 산맥을 형성하는 여러 산과 흘러가는 구름에 포옥 안긴 하나의 고성,
지어라 아저씨가 여행객을 데리고 와서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그 풍경..
그 모든 것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이 바로 호텔 최고의 전망이다.

터널산(Tunnel Mountain)을 올라가는 길목에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근처 밴프 예술학교(The Banff Centre)을 찾아서 가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하이킹을 하는 기분으로 찾아가보면 좋을 듯하다.




이른 아침 호텔을 떠나기 전 외벽의 돌을 쓰다듬으니 서늘한 초봄의 기운이 손끝에서부터 찡~하고 전해져 온다.
이렇게 쓰다듬으면 내가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생생함을 느낀다거나 그 당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
사실 그런 건 나에겐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기분으로 쓰다듬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국에서도 그리고 어딜 가서도 이렇게 역사가 오래된 건축물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너 참 꿋꿋이 잘 버텼구나..그 세월 어디 가질 않고 여기에 있어줘서 고맙구나."
그런 마음으로 살살 쓰다듬다 보면 괜스레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달까?
거짓말처럼, 혹은 조금은 오버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125년의 역사가 손끝으로 느껴지는 순간, 나와 이곳 사이에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마음이 생기는거다.

여섯 개의 말할 수 "있는" 비밀과 한 개의 말할 수 "없는" 비밀
호텔 곳곳에 쌓인 이야기들을 고개 들어, 쪼그려 앉아, 길을 잃고, 만져보며 그렇게 발견했다.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 (The Fairmont Banff Springs Hotel)
405 Spray Avenue Banff Alberta, Canada, T1L1J4 
홈페이지 : http://www.fairmont.com/banff-springs/
소소한 1% 이야기 : 뭘 모르고 호텔방에 있던 인터넷 사용하다 새벽에 방문 아래에 있던
                           14.65CAD가 적힌 청구서를 보고 난 후 충격으로 잠이 안 오더라는.

<이번 포스팅은 하나투어와 트래블 웹진 '겟어바웃', 알버타 관광청의 지원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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