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주 퀸즈랜드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가장 큰 기대를 했던 곳은 바로 숙소였다.
워킹홀리데이로 있는 동안 짧고 긴 여행을 두어 번.
그때의 여행은 늘 ‘묵는 곳’에 대한 중요도가 다른 것들에 비해 뒤로 밀렸기 때문에
‘호텔’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묵는 건 언감생심, 차에서 자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흑.
그런데 이번 여행이 정해지고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이름,
힐튼 서퍼스 파라다이스 레지던스. Hilton Surpers Paradise Residenses.
여행을 같이 떠나는 절친 우쿠야 숙소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이름만으로 심장이 바운스바운스(!)했던 것도 사실!
멋진 풍경에 사진 찍기 바빴던 순간부터 오성급 호텔 요리사로 변신했던 이야기까지
여행의 즐거움을 두 배로 만들어 준 이곳에서 보낸 이야기를 기록했다.
- 패리스 힐튼의 힐튼이 이 힐튼인거지?
- 그러게.
호텔에 들어서면서 우쿠와 나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늘 머물 곳에 대한 이미지의 대부분이 그녀가 차지하고 있다니.
그 ‘힐튼’이란 이름이 갖는 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묵는 힐튼 서퍼스 파라다이스는 169개의 호텔객실과 250개의 레지던스와 펜트하우스를 갖춘
55층 높이의 Orchid Tower와 32층
높이의 Boulevard Tower로 이루어진 곳이다.
오늘 내가 묵게 된 곳은 호텔객실이 아닌 레지던스로,
일반적인 호텔객실과는 다르게 ‘살 수 있게끔’ 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방이다.
오늘부터 삼일 동안은 우리 집!
방문을 열고 역시 기대는 어긋나지 않는다고 좋아했던 것 같다.
넓고 깨끗한 방에 이번 여행의 좋은 기운이 막 쏟아질 것 같았달까.
두 명이 함께 묵기에 꽤 많이 좋았던 이 방에서 삼일이나 묵게 된다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요걸 고대로 내 집으로 하면 안 될까나?
- 이방 청소하려면 진짜 힘들겠다
- 니가 하는 것도 아닌데 뭘.
워홀 생활을 끝내고 생긴 버릇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객실에 있는 모든 것들의 상태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멜버른에서 머무는 몇 달 동안 하우스키핑일을 했었기에 호텔방 하나하나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데
혼자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침대를 접어놓은
상태 확인부터 서랍부터 냉장고까지
온갖 문을 다 열었다 닫았다 하는 나를 보고 우쿠가 한마디 거든다.
- 우린 깨끗하게 쓰자.
이 방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오션뷰(Ocean View)다.
방문을 여는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닫혀 있던 커튼을 열어본 것.
예전에 골드코스트에 묵었을 때는 바다가 보이는 방이 아니었던지라 아쉬운 마음이 그득했는데
이번 여행은 골드코스트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다가
저 멀리 파도가 밀려드는 소리까지 완벽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마음에 쏙 든 멋진 방이었다.
첫째 날은 날씨가 흐려서 상상했던 것만큼 멋진 하늘과 바다를 바라볼 수 없었지만,
둘째날은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 맑고 흐린 날씨가 반복적이었던지라
제대로 바다를 볼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도 깨끗한 하늘과 바다가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열었을 때 보여지는 눈 시원한 풍경은 이번 여행에 손꼽는 최고의 순간!
베란다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골드코스트의 멋진 집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이 보였다.
저 집들은 유명한 연예인이나 이름난 명사들의 별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볼 때는 그저 집들이 멋있다고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전체의 모습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이 찾아가지 않아도 찾아와주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룸서비스입니다
한창 방안을 둘러보면서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감탄할 때였다.
룸서비스라며 호텔직원이 가져다준 것은 초콜릿과 과일 그리고 환영메시지.
이런 환대는 처음인지라 괜스레 쑥스럽기도 하고 헤벌쭉 좋기도 하고.
퀸즈랜드 원정대에 지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면서
눈부신 성공을 이루어낸 우쿠에게 광채가 막 뿜어져 나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ㅎㅎ
오성급 호텔 쉐프로 변신하다!
밤이 찾아왔다.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골드코스트의 밤바다와 그 앞에 열린 자그마한 마켓들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이런 바다를 멀리서만 지켜보는 것은 정말
아까운 일인지라 냉큼 옷을 챙겨 입고 바닷가로 향했다.
묵직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배경음악으로 한 채 호주에서 머물렀던 시간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걷기를 수십 분..
-꼬르륵
-밥 먹으러 가자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굶주린 배는 정확한 시간에 울렸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직접 해 먹자는 것.
숙소가 레지던스이다 보니 주방기구는 다 갖추어져 있고 적당한 메뉴만 고르면
번거롭지 않게 근사한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른 오늘의 메뉴가 ‘한 면당 1분 30초만
구워주세요~ 스테이크’
호텔 근처에 ‘울월스(Woolworth)’라는 큰 슈퍼마켓이 있기 때문에 재료를 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방에 조리기구와 소금, 후추가 있지만, 여타의
조미료나 식자재는 없어서
다른 조미료를 사질 않고 할 수 있는 메뉴로는 스테이크가 딱 적당한 메뉴였다.
참고로 한번에 두 번 끓여 먹을 수 있는 컵스프 3개, 아스파라거스
한 뭉치, 양파 한 개, 버섯 4개,
스테이크 소스, 스프레이식 올리프 오일, 토마토,
훈제연어, 비스켓, 스테이크용 안심을 약 33달러(AUD)에 구매했다.
그리고 그렇게 산 재료들을 삶고, 끓이고, 굽고, 조물락(?)거려서 만든 오늘의 저녁 밥상!
만들어 놓고 보니 어찌나 근사하던지.
이걸 정녕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인가 감동하며 조금 더 괜찮은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내겠다고
스테이크가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웃어대며 사진을 찍기 바빴다.
마지막으로 보틀샵에서 10달러 정도 주고 산 포도주를 따르자,
여느 레스토랑 못지않은 멋진 식사가 완성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또 번 감동하며 음식 먹는 건 뒤로한 채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 5성급 호텔에서 머무니까, 이것이야말로 5성급 호텔 요리사네.
- 한 면씩 1분 30초를 굽기 위해 타이머를
사용하는 요리사 말이지.
그런데 사실 말이 호텔요리사지 우리의 요리 실력은 이번 요리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
호주가 ‘소고기’와 ‘와인’으로 유명한 나라다 보니 이 두 가지만 있다면
근사한 스테이크
요리 정도는 손쉽게 만들 수 있었던 것.
그렇지만 100% 완벽한 요리가 아니어도 어떠한가.
좋은 사람과 함께 요리하며 떠들고, 건배하며 웃는 이 순간이 그저 즐겁고 재미난 것을.
레지던스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그래서 더 신 나게 보냈던 것 같다.
별 것 아닌 요리를 함께 만들면서 양껏 감동 받고 좋아하고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맑은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늦잠 자는 이를 깨워대기 바빴고
별이 보인다며 베란다에 카메라를 켜놓고 몇 시간을 목 빠지라고 하늘을 바라봤던
그런 날들을 보내면서 우린 여행을 시작하며 투닥거렸던 일은 그렇게 잊어버렸다.
- 우리집이었음 좋겠다
- 그러게. 근데 다음에는 더 좋은 곳으로 또 가면 되지.
별이 뜬 하늘 아래 와인 한잔을 들고 하늘에 뜬 별 사진을 찍으며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머물면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좋은 서비스에 좋은 시설을 이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바운스바운스(!)했던 그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여행 때마다 미루어 두었던 ‘묵는 곳’에 대한 아쉬움을 이번에야말로 100% 충족시키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섬세한 그 남자, 우쿠빵의 꼼꼼정리]
HILTON SURFERS PARADISE
http://www3.hilton.com/en/hotels/queensland/hilton-surfers-paradise-OOLHIHI/index.html
1. 체크인은 오후 3시 부터 지만, 방 준비 상황에 따라서, 일찍 체크인 할 수 있다.(우린 1시에 체크인 완료!)
2. 힐튼 골드 멤버쉽일 경우 체크인 시, 멤버 번호를 알려주면 방 업그레이드, 프리 와이파이,
조식과 스파 50%할인 등, 기타 추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3. 기물손상, 추가서비스 이용과 관련해서 $300의 디파짓을 요구하므로,
해외에서 사용 가능한 VISA카드등의 신용카드는 준비해두면 좋을 것 같다.
(체크카드는 안됨 - 현지에서 워홀 시 사용했던 NAB 카드라서 체크 카드라서 승인에서 오류가 났음)
4. 리셉션 직원들은 언어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5. 비가 오면 컨시어지에서 우산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숙박 증명이나, 신분증을 요구하지는 않음)
6. 레지던스라서, 요리가 가능하므로 바로 옆 centro(프렌차이즈 쇼핑몰)에 있는 '울워스'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스테이크,주류,음료,간식류 구매 가능하다.
7. 힐튼 서퍼스파라다이스는 비치 바로 앞에 있고, 패스트 푸드, 카페, 클럽, 쇼핑몰등 편의 시설들이 집중해 있어서,
특별히 대중 교통없이 웬만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1%의 소소한 이야기 : 호텔 하우스 키핑의 추억이 물씬.
밖에 나갔다가 오니 한창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방을 하우스키퍼가 청소하고 있었다.
그냥 대충하고 가면 된다는데도 어찌나 꼼꼼하게 해 주는지.
그나저나 그가 가고 나서 화장실 갔더니 세면대 위에 내가 가지런히 올려둔 물건들을
가지런히 서랍으로 이동시켜뒀더라는. 원래 손님 물건은 건들면 안되는건데..;
이렇게 잘 정리해놓고 나가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싶더니, 이곳의 하우스키핑 업체가 내가 멜번에서 일했던 곳과 동일한 곳이었다.
저 귀여운 모양의 청소기와, 하우스키퍼들의 옷을 보면서 그 힘든 시절(?)이 다시 떠올랐다.
그땐 청소를, 지금은 투숙을. 나 많이 출세한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