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몇 주 앞두고 늦은 여름휴가를 쓰기로 했다.
회사 규칙상 여름 휴가를 쓸 수 있는 건 '3일'.
그래서 최대한 붙여 기---일---게 가고자 추석 연휴 앞뒤로 붙였더니 10일 정도가 되었다.
직장인에게 10일의 휴가라니.



내가 당신을 만나고 나서 あなたと会った後、私は
9박 10일의 도쿄여행을 기억하며


올 초만 하더라도 유럽이라도 가겠다고 생각했건만, 그러기엔 이미 티켓팅에 실패했다. 사실 '만사가 귀찮다'는 것이 요인이기도 했다. 지지부진하게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다 뒤늦게 선택하게 된 곳이 도쿄로, 일본어가 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는 생각이 한몫했다. 여행계획 짜는 게 어렵기만 한 '여행 무식자'에게 10일이란 시간은 좋긴 해도 그저 길다.




사람을 만나야지. 그다음은..글쎄.

그래서 생각했다. 일단 도쿄에 가면 사람을 만나는 거다. 사람부터 만나고 나면 그 나머지 시간에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겠지. 내가 짠 여행 계획은 딱 이것뿐이었다. '어딘가에 가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겠다'라는 그 흔한 계획이 없는 '사람을 만나자'라는 계획. 3년 반의 일본생활과 1년 간의 호주 생활로 덕에 일본인 친구 몇 명과 일본에 생활 중인 한국 지인들이 있기에 가능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렇게 떠났다. 5년 만의 다시 찾는 도쿄로.




10일간 7번의 만남을 가지다. 

지금 생각해도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여행이었다. 10일 동안 7팀의 사람들을 만났으니,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혼자 보낸 날은 겨우 2일. 별도의 여행계획을 짜지 않은 나름의 계획은 이러한 만남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호주에서 만난 유이와 마사키 커플, 사오리, 레미. 일본에 지내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은 자영언니, 종호님, 한우사장님, 상미선배와 철님, 수아양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만에 보는 사람들임에도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은 물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쿄행을 선택할 때 즈음 내 안엔 복잡한 마음이 가득했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계속되어왔던 이유 모를 우울함과 불안감은 어른이라는 단어와 맞물려 나 자신을 뒤흔드는 모양새로 펼쳐졌다. 무계획의 도쿄행에 한 가지 조건이 더 붙게 된 것도 그런 마음 상태에 나를 내버려 두지 않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번 여행에 붙인 한 가지의 조건, 도쿄가 나를 설레게 한다면 다시 도쿄에서 살아야지. 




익숙한 도쿄, 익숙한 이들이 있는 곳.

도쿄에 도착한 첫날, 나리타공항에서 도심으로 나가는 방법을 몰라 헤맸다. 3년 반의 도쿄생활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자신만만했구나 싶기도 했고. 그후의 나머지 시간은 다행히도 큰 문제 없이 지하철역을 몇 번 헷갈리게 했을 뿐, 낯설게 다가오진 않았다. 문득 여행 전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설렘'이 없는 건, 이러한 익숙함 때문일까란 생각도 들었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찾은 도쿄이건만, 나는 당초 생각했던 대로 일본에서 짧게 살아보는 느낌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났다. 연애와 결혼, 사회생활, 인간관계 등,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생각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무언가 실마리를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은 똑같아, 그러니 이대로..

도쿄는 생각보다 설레지 않았다. 도쿄가 설레게 한다면 다시 도쿄에서의 삶을 가지겠다는 마음은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익숙해서도 재미가 없어서도 아니라 그냥 환경이 변화하는 것으로 내가 변화할 것이라는 생각은 넣어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 모두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다양한 고민과 생각 속에서 휘청거리다가도 스스로 이겨내며 나아가고 있었던 것. 문득 결국 나는 나 혼자 심각할 대로 심각해져서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바뀌진 않아도 이겨낼 수 있을 거다.

10일간의 여행 동안의 만남은 어느새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도 그렇고.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마음도 사실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루가 지날수록, 해가 바뀔수록 더 다양한 선택의 순간과 그에 따른 후회와 좌절감이 밀려 들어 그때마다 휘청거리고 쓰러질 거다. 결국 상황도 내 마음 상태도 바뀐 건 없다.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생겨난다. 그렇지만 조금은 알게 되었다. 분명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나 자신을 조금 더 믿고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아가자고. 



9박 10일의 시간동안 보통의 여행과는 다른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덤덤하게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고, 한숨 크게 한번 내쉬며 괜찮다고 토닥여 줄 자신도 생겼다. 나는 괜찮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 여행은 그걸 알게 해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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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 Panasonic G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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