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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의 어느 날, 그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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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져서 부진하는 모습을 뉴스나 신문을 통해 접할 때가 있다. 비단 그들만 슬럼프에 빠지랴.. 나에게도 일본어를 공부하다가 슬럼프라는게 찾아왔다. 지금도 어설프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 당시 나는, 늘지 않는 일본어에 꽤나 좌절을 했었다. 공부를 한 지 1년 정도 되어 가고 있는데 무언가 '나아짐'이 보이지 않던 그때, 나는 하루도 빼먹지 않던 일본어 학원을 도중에 그만둘 정도로 힘들었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던 중, 나는 마음을 달랠겸 한 일본영화의 프리미엄 시사회를 신청하였고 회사 연차를 내고 간 그 곳에서 이와이슌지를 만났다.






짧은 시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풀어내는 몇몇의 이야기들이 통역이 아닌 그의 말로써 조금씩 이해가 되어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중간중간 모르는 말들은 통역을 통해서 전해졌지만, 나는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여태껏 해 온 공부가 그렇게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감격했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짧은 만남의 끝은 싸인회로 마무리되었다. 이와이슌지의 영화를 좋아하는 어떤 이는 자신의 티셔츠에, 또 다른 어떤 이는 영화 DVD에 그의 싸인을 받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준비 해 두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관객과의 대화가 끝날 무렵부터 준비 해 두었던 멘트를 주섬주섬 그에게 말했다. "ポラロイド写真を撮って、そこにサインをもらってもいいですか?(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거기에 싸인을 받아도 될까요?)" 그는 이 제안이 재미있었는지 흥쾌히 수락을 해주었고. 나는 이 세상에 한 장 밖에 없을 멋진 폴라로이드 사진을 얻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날 주변에서 들려온 부러움의 목소리보다도 나를 더욱 감격케 한 것은 어설픈 나의 한마디가 일본인인 그에게 통했다는 것이었다. 1년동안의 노력이 단순히 물거품만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되어 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지갑 속에 고이 보관하고, 나는 며칠 뒤 일본어 학원을 다시 등록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 싸인을 해 달라며 내민 폴라로이드의 까만 뒷면에 당황하던 나와 그 모습을 보고 웃던 이와이슌지. 비록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늘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블로그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끌어왔습니다. (백업이 안되서, 일일이 손으로 수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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