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의 가장 고난을 꼽는다면 역시 8할 이상이 날씨였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곳이 ‘나이아가라 폭포’.
비가 와 호텔로 도망치듯 피신하면 곧 그치고 돌아보기 위해 다시 나가면 이내 쏟아지고.
그러다가 천둥이 우루루쾅쾅.
나이아가라란 이름이 인디언어로 ‘천둥소리를 내는 물(ongiara 온기아라)’에서 왔다더니
쏟아지는 폭포소리와 함께 어찌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날씨인지.
그래서 나는 더 부지런히 구경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더 제대로 보겠다는 생각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나이아가라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하늘에서 바라볼 수 있는 헬기투어나, 파도 앞까지 가는 안개 속의 숙녀호(Maid of the Mist),
동굴 속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저니 비하인더 폴스 (Journey behind the Falls)까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흐린 날씨와 시기상의 문제로 내가 선택한 것은 이와는 다른 방법이다.
그 중의 하나가 높은 곳에서 나이아가라를 바라볼 수 있는 스카이론 타워(Skylon Tower)에 가는 것이다.
사실 전날 토론토의 CN 타워의 악몽(날씨가 엄청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의 트라우마로
스카이론 타워에 오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가니 전망대까지 올라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2달러를 할인해 주는 쿠폰까지 챙긴 터라 오르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불끈.
- 어제 토론토에서 실망했는데, 오늘
정말 폭포 제대로 볼 수 있어?
- 응, 캐나다 쪽 폭포만 안개가 끼긴 했지만 볼 수 있어.
한차례의 고난을 겪었던 터라 이번엔 표 파는 직원에게 제대로 확인까지 거친 후에 전망대로 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보이는 날씨가 좋지 않아서 문을 닫아두었다는 문구가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라는 걱정도 하게 만들었지만, 다행히도 다른 문을 통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는 360도로 전 방향을 돌면서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데,
이를 돕기 위해 실내의 유리에는 각각의 위치에 어떤 포인트뷰가 있는지를 하나하나 다 적혀있었다.
그러나 역시 실내보단 실외에서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기억에는 더 강렬하게 남는다.
자, 이제 문을 열고 나가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느끼며 바라봤던 철조망 너머의 풍경을 하나하나 꺼내본다.
관람차가 보이던 클립톤 힐(Clifton Hill)의 풍경.
나이아가라 주변의 마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지만, 가게 하나하나가 개성적이다.
물론 마을을 구경할 때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소낙비에 날 곤경에 처하게도 하였지만.
비가 그친 저녁, 매직아워 시간 때 바라봤던 작은 마을의 풍경은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났다.
중간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면 미국 땅으로 사진의 왼쪽이 캐나다, 오른쪽이 미국이다.
미국을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입국심사가 거쳐야겠지만,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다른 나라가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참에 미국까지?
나이아가라 폭포는 사실 미국에서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는 아메리칸 폭포(American Falls)와
캐나다 쪽에서 바라보기 쉬운 캐나다폭포(일명 말발굽폭포 Horseshoe Falls)를 다 포함하는 말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이아가라의 이미지는 캐나다의 호스슈 폭포 이미지가 큰 것 같다.
그래서인지 폭포는 미국의 소유지만, 돈은 캐나다가 다 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닐는지.
실제로 아메리칸 폭포보다 캐나다 쪽의 호스슈 폭포가 더 웅장하고 멋있는 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흐린 날씨로 심하게 피어오른 물안개로 이날만은 아메리칸 폭포가 더 예뻤다는 것에 한 표.
땅에서 바라보는 나이아가라는
스카이론 타워에서 내려와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오로지 잿빛인 하늘과 저 멀리 폭포 주변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절묘한 조화란.
실제로 폭포 주변에 늘 물안개가 있어 그 모습을 완벽하게 보기란 어렵다곤 했지만,
이날은 유난히 더 많은 물안개가 낀 것 같았다.
그래도 아쉬워하지 않으리.
여행하는 동안 생겨난 이 알 수 없는 긍정의 힘은 폭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 폭포로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결심하게 한다. 다가가자. 한 발짝 더.
캐나다 쪽에서 접근이 가능한 호스슈 폭포로 다가설수록
커지는 소리만큼이나 엄청난 바람,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것인지 폭포에서 날라오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물방울들이 세차게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위험하다는 안내표지판에도 한 걸음 더 내딛게 되는 것은 그럼에도 조금 더 가까이에서 폭포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일까.
조금 더 조금 더 앞을 향해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선다.
그렇게 폭포물이 떨어지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있었는지.
나의 강한 의지에 반해 유일하게 날 지켜주던 우산은 얼마 가지 않아 망가져 버렸다.
갈수록 강해지는 바람과 물방울이 카메라 렌즈를, 우산을, 내 얼굴을 어찌나 후려갈기는지.
내 얼굴보다 소중했던 지켜야만 했던 카메라를 위해서 일단 폭포 근처에 있는 테이블락 센터로 잠시 몸을 피했다.
웅장한 폭포 앞에 선 사람들은 참 작다.
그래도 그 바람과 물방울을 온몸 가득 받으며 이 위대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우산이 뒤집어진 것도 그저 재미있어서 모두가 웃는다.
이 날씨에. 이 바람에. 이 비에 말이다.
그들을 바라보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다시 테이블락 센터를
나섰다.
우산은 접어버리고 카메라는 옷 안으로 넣고서 폭포에서 퉁겨져 나오는 물방울을 그대로 느끼며 한참을 폭포를 바라봤다.
떨어지는 물줄기의 속도는 발끝을 움찔하게 하는 두려움을 눈가를 적시는 폭포의 물방울은 쏴한 시원함을.
알 수 없는 두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밤에 만나는 나이아가라는
- 이런 사진 풍경은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 지금.
호텔 로비 한편에 있던 기념품 가게였다.
밤에 찍은 나이아가라 폭포(아메리칸폭포)의 전경을 담은 엽서를 사고선 주인에게 물었을 뿐인데
엽서 속의 모습을 지금 가면 볼 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니었던가.
이미 온종일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주변을 둘러봤지만, 놓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냉큼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어떤가. 엽서만큼 잘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근사한 밤의 나이아가라 폭포 사진이 아닌가.
기념사진을 찍던 커플이 삼각대를 세워두고 혼자서 멀뚱히 있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많은 시간을 공들여 찍은 나이아가라 폭포 사진은 참 마음에 들었다.
이 오색찬란한 빛은 폭포 뒤편에서 조명을 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한 것과 달리
알고 보니 폭포의 맞은 편에서 쏜 조명이 폭포에 그대로 비추어지면서 만들어내는 광경이었다.
극장의 스크린과 같은 이치랄까.
어떤 날은 밤의 폭포와 함께 하늘로 쏟아 올린 불꽃놀이가 장관을 만들어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이번엔 이 조명쇼를 놓치지 않고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낮에 봤던 호스슈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뇌리에 남았던 지라 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져 찾아갔다.
폭포에서 빛이 어느 정도 새어 나오기는 해도 주변이 온통 깜깜해
오로지 소리로 느끼는 그 위력과 무서움이 나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나이아가라 강물의 90% 이상이 이곳에서 떨어진다는 그 말을 실감한 것도 이 순간.
나이아가라를 떠나는 날, 그날도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버스가 서는 정류장까지 가기 위해 부서진 우산을 들고 터덕터덕 걸어가는데
저 멀리 나이아가라 폭포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쾅쾅.
발끝에서 다시 한번 움찔했던 그 느낌이 전해지고 부서진 우산을 뚫고 들어오는 비가 얼굴을 적신다.
지금 이 소리는 하늘이 내는 소리였을까.나이아가라 폭포가 내는 소리였을까.
분간이 안되는 소리가 계속 귓가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