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시장가자~"
'시장' '슈퍼' '장' 등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내게 이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추석 연휴, 오랜만에 찾은 고향 집 거실에 널브러져 막장 아침 드라마 시청에 잔뜩 몰입하던 중이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남편과 새 부인이 주인공의 아이를 어쩌느냐 저쩌느냐 하는 장면을 더 보다간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을 참이었으니 이것보단 역시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훨씬 성미에 맞을 터.
그렇게 출발하여 아침부터 장을 보기 위해 도착한 곳은 내 고향 창원에 위치한 '번개시장'이다.
보통 전국의 '번개시장'이라는 이름을 붙는 곳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장이 서서 그런 곳이 많은데 이곳도 그런 아침 시장이다.
내가 살던 창원시와 옆 동네 마산시가 통합하여 통합창원시(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름 이상하다)가 되었기에 지명은 창원이지만,
엄연히 번개시장의 위치는 '마산역'으로 2012년 12월에 40년의 세월로 인해 낙후된 시설을 깔끔하게 단장하여 만든 시장이다.
(▶관련기사 : 마산역 번개시장 40여년 만에 새단장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21022000054)
엄마의 번개시장 강력 추천메뉴는? 콩국 한 대접.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콩국을 먹고 가잰다. 콩국? 콩국수? 그게 뭐지.
콩국을 파는 자판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이 시장에서 나름 '팔리는' 메뉴임은 틀림없는데 어떤 맛일는지.
어렸을 때 콩국수를 그다지 맛없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사실 그리 즐기는 당기는 음식은 아니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이것 참 별미다.
콩국에 찹쌀 도넛(인지 튀김인지)이 들어가 있고 그 위에 콩가루를 올려 나오는 심플한 음식이지만, 맛은 정말 최고!
단백질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 중인 요즘의 내 입맛에 딱 맞는 담백함이오, 찹쌀의 쫀득함과 콩가루의 고소함까지 느낄 수 있어
아침부터 들이키는데도 술술 넘어가는 것이 서울에 챙겨가고 싶은 음식이었다.
예전엔 시장에 가도 파는 물건에 대한 흥미는 그다지 없고 오로지 오뎅이나 호떡같이 '먹고 싶어, 사줘' 품목만 눈에 들어왔는데
어느새 건강을 챙기고 직접 음식을 해 먹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과일이고 채소고 하나같이 눈에 들어온다.
큰 대형 마켓에 비하면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빨간 바께스(이렇게 불러야 할 것 같다)에 가득 담아놓은 모습은
재래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던가. 빨강, 노랑, 초록이 뒤섞여있는 시장의 색은 참 곱기만 하다.
번개시장 최고의 인기품목?!
한 편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무얼 파는 곳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나 했더니 갓 만든 따끈따끈한 두부의 등장.
늘 팩에 깔끔하게 포장된 슈퍼마켓 두부만 보다가 백설기 떡 같은 느낌의 두툼한 두부를 보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2,500원이냐 3,000원이냐 가격을 말하면 그것에 맞게 주인아주머니가 한판에 꽉 찬 두부를 칼로 쓱쓱 잘라서 건네어 준다.
자로 정확하게 잰 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크기가 다르긴 하지만, 그것도 시장 두부만의 매력!
같은 가격이라도 시장에서는 '조금 더 듬뿍'이란 옵션이 달려 있다 보니 무얼 사도 잘 샀다란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큼지막한 손으로 콩나물 3,000원치를 팍팍 봉지 찢어지라 담아주는 아주머니의 손도
가장 큰 전을 잘 접어서 담아주는 할머니의 손도 정이 묻어나오는 시장 특유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오늘의 마지막 쇼핑은 양말이다.
가지런히 자판 위에 놓인 양말을 보면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나와는 달리
여러 번 사본 양 엄마와 언니는 익숙하게 양말의 질과 디자인을 따져가서 꽤 꼼꼼하게 골라낸다.
집에 돌아와 이날 산 덧신 양말을 신어보던 두 모녀는 꽤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는지 상당히 감탄하더라는.
필요한 장을 보고 돌아서는 길 콩나물파는 자판 옆에서 호객행위(?) 중인 시장견도 만났다.
짧은 다리 큰 머리. 딱 봐도 흔한 X개임이 틀림없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분명 매출에 한 몫을 하고 있을 듯.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신기한 양 쳐다보는 눈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먹을 것을 건네며 쓰다듬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을 봐 온 것들을 이용해 엄마는 아침상을 멋지게 차려주었다. 아, 얼마만의 엄마 밥인가.
상다리 부러질 듯 빼곡히 올라온 반찬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배가 부른 기분이 든다.
조금만 먹겠다고 하는데도 늘 밥공기 가득 차려주는 밥도 여전하고 배불러 밥숟가락 내려놓으려고 해도
늘 왜 이렇게 조금만 먹느냐며 더 먹으라고 반찬을 올려주는 것도 여전하다.
추석 연휴는 이렇게 정겹고 소박하게. 그리고 한 상 가득 차려진 엄마 마음처럼 행복하게 보냈다. 아, 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