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나의사랑
아아- 이 죽일 놈의 사랑아, 뮤지컬 베르테르
지난 토요일에 방송된 응답하라 1994에서는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 출국을 앞둔 칠봉이(유연석)이 쓰레기(정우)를 찾아와 이번엔 나정(고아라)을 뺏겼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분신과 같은 야구공을 다시 찾으러 오겠다며 쓰레기에게 맡기는.
이 이야기를 두고 칠봉이의 순정에 대한 많은 여인들의 감탄과 안타까움이 이어졌지만, 한편으론 그런 이야기도 들렸다.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가 된 이를 굳이 그 여자의 남자친구에게 찾아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찌질한 일이 아닌가, 그건 집착이고 지독한 일이라고.
칠봉이의 사랑에 대한 이 양반된 반응을 두고 어떤 것이 맞는지를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 베르테르를 이야기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랑의 트렌드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순정 혹은 집착.
베르테르의 사랑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하나의 순수한 사랑으로 이해되기엔 집착같아 보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하 뮤지컬 연출과 관련된 부분을 넘어서서 우리가 가진 사랑의 관념이 바뀐 것은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과연, 베르테르는 순수한 남자인가.아님 사랑의 집착에 사로잡힌 남자인가.
관련 기사 : '응답하라 1994' 유연석, 정우에 선전포고 "야구공 다시 찾으러 오겠다" (New 24)
괴테의 인문학 강의가 남긴 것은..
불타는 금요일 밤 남들이 우려하던 괴테 인문학 강의를 다녀온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그들의 우려와 달리 나는 매력남 괴테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고 그는 자연스레 이 뮤지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뮤지컬 베르테르.
2000년 초연 이후 13년째 이어지고 있는 뮤지컬이란 사실도 흥미롭지만,
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이 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 높은 창작뮤지컬이다.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막이 열렸고 이번은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지난 3일부터 공연이 시작되었다.
관련 포스팅 : 괴테와 함께하는 인문학 데이트 :: 뮤지컬 베르테르와 함께하는 인문학
해바라기를 닮은 이, 베르테르
뮤지컬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각색하여 만든 것으로
이미 소설 자체로도 그 문학성과 다양한 이야기로 알고 있는 이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19세기엔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끌며 젊은이들 사이에선 극 중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런 연유로 금서가 되기도 했고 동조자살을 의미하는 '베르테르 증후군'이란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 소설이다.
여기서 한가지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지만, 막상 소설을 쓴 괴테는 80년 넘도록 장수했다.
소설의 내용을 알지 못해도 베르테르가 이루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 정도는 이미 알려진 내용.
이번에 개막한 뮤지컬 베르테르는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에 몇 가지 설정을 더해 조금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의 배경인 발하임을 화훼도시로 그리며 각각의 캐릭터를 꽃에 비유한 점이 그러한데
해바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베르테르의 이미지를 해바라기 꽃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해만 쫓아 움직이는 해바라기처럼 롯데만을 바라는 베르테르의 짝사랑은 그렇게 닮아있다.
하훼산업도시, 발하임. 어느날 베르테르는 자석산에 대한 인형극을 하며 신비한 모험에 들뜬 롯데의 모습에 한번에 매료되고, 롯데 역시 시적 감흥을 아는 그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베르테르는 점차 롯데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진다. 알베르트는 약혼자인 롯데와의 평화로운 삶을 지키려하고, 베르테르는 그들의 행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발하임을 떠난다. 그러나 긴 여행 끝에도 롯데를 잊지 못해 발하임으로 돌아오는데...
오늘 공연의 베르테르 임태경, 롯데 전미도, 알베르토 이상현, 오르카 최나래, 카인즈 최성원이 연기했다.
평소 뮤지컬을 즐겨봤다고는 할 수 없는지라 KBS 불후의 명곡에서 그 얼굴을 본 임태경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해도 무방한데 극의 캐릭터만 두고 보자면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가장 잘 살려낸 연기자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공연이었다.
아, 이 순수한 사랑이여.. 베르테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베르테르 역의 임태경.
이미 몇 차례 베르테르를 연기한 바 있는 레전드 베르테르(?) 엄기준의 권유로 참여하게 되었다던 임베르의 경우엔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것처럼 자신도 이 작품에 빠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말에 들어맞듯 임태경의 베르테르는 롯데에 푹 빠진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게 보일 수 있는지
여실히 느껴지는 그 사랑으로 가득 찬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론 나이를 더 먹으면 이제 시켜주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농담을 던진 엄베르의 연기도 상당히 궁금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젊은'이 빠진 건 그러한 이유일까.
외모에서 풍기는 귀공자스러운 분위기 때문인지.(실제로 그는 뮤지컬의 황태자라고 불린다.)
사랑이 깨어지는 순간 좌절하는 모습은 성숙한 남자의 모습보단 첫사랑이 깨어져 버려 흔들리는 소년으로 보여졌다.
겨울 호숫가 주변에 살짝 언 얼음 위로 발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파삭 소리를 내며 깨어지던 그 모습처럼
임태경이 연기한 베르테르는 너무 순수했기에 깨어지는 모습까지도 안타깝다.
한 마리의 종달새 롯데, 이성적인 알베르토
그런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자 롯데.
전미도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베르테르가 빠질 만큼의 미모란 생각을 했는데
롯데의 매력은 한 마리의 종달새와 같은 가볍고 밝은 귀여움이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은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졌지만,
베르테르에게 빠지는 사랑의 과정이 불친절하게 묘사되어 현대말로 표현하자면 어장관리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알베르토와의 결혼 이후 무언가 불안감이 아주 살짝 드러나며 연락 없이 떠난 베르테르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샌가 연모의 정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안타깝게 롯데의 노래와 이야기에서는 그런 설명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 아쉽기도 하다.
그에 반해 알베르토는 악역으로 비추어지기 쉬운 인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가는 매력을 지녔다.
이것은 구소영 음악감독이 알베르토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주기 위해 그를 위한 곡을 추가했다는 의도처럼
이 뮤지컬에서 가장 성숙한 사랑을 하며 이성적인 면을 보이게끔 한다.
뮤지컬에선 베르테르도 롯데도 카인즈도 순수하기에 그 사랑이 서툴고 어리게 느껴지는데
알베르토가 갖고있는 가장 이성적인 어른의 연애는 그런 세상에선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에
그의 사랑은 어떤 면에서 악역처럼 비추어지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나 극을 통해서 알베르토의 사랑이 이해되는 것만 보더라도 앞서 말한 사랑의 트렌드가 바뀌었음을 느끼게 한다.
붉은 사랑의 잎이 질 때까지.. 카인즈
베르테르에서 날 울린 장본인은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아닌 카인즈였다.
베르테르의 맹목적인 롯데를 향한 마음에 대한 순정인가 집착인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면
카인즈의 미망인을 향한 사랑은 조금 더 설득력이 있는 순정으로 비추어진다.
그런 그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더라도
그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키스를 받아 최고로 환희에 찬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잘된 일이죠. 후회도 안해요.. 이젠 홀가분해졌죠... 라고 마지막 노래를 부르던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그 순수한 사랑에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
카인즈의 옷에 새겨진 장미의 자수처럼 최고로 아름다운 붉은 장미는 그렇게 아름답게 폈다가 진다.
카인즈를 연기한 최성원은 그 얼굴과 이름이 낯익어 계속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을 하게 했는데
KBS 남자의 자격의 합창단편에서 오디션 보던 장면이 기억났다.
그가 당시 불렀던 노래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사이의 수록곡으로
CJ소셜보드 활동을 시작하며 가장 처음으로 본 뮤지컬이기도 해서 새삼 놀라웠다.
참고로 그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사이'의 최연소 베드로 신부를 연기하기도 했다고.
그런 그가 카인즈를 연기하면서 뚝뚝 떨어뜨리는 눈물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울컥한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도 눈물 맺힌 눈으로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던 그가 오르카 역의 최나래에게 끌려가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카인즈가 정말 행복해진 것 같단 생각이 들어 흡족해졌다.
관련 포스팅 : 누구나 마음속에 사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사이
그런 면에서 괜스레 오르카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베르테르의 사랑도 카인즈의 사랑도 틀린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 주는 또 하나의 어른인 오르카.
그 배역을 맡은 최나래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오르카가 가진 넉넉한 마음씨를 고스란히 표현했다.
2막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에 가장 먼저 나와 그 앞에 앉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오르카의 매력이 실제로 그녀의 매력과 같지 않은가란 생각이 하게 했다.
그리고 우린 흔히 이런 표현으로 말한다. 언니, 짱짱걸 ^^
무대가 끝나고 모든 배우들의 눈은 젖어 있었다
여느 뮤지컬보다 감정의 소비가 클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사랑의 환희와 갈등, 좌절, 고통을 하나의 스토리에 다 담겨있으니 말이다.
서정적인 실내악이 그 분위기를 고취시키고 배우들은 이야기에 맞추어 자신이 가진 모든 감정을 끌어낸다.
그 연유에서인지 아니면 극이 끝나고 모든 이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친 연유에선지 배우들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연출의 풀어내는 과정의 불친절함에 대한 것보단 소설이 나올 당시만 하더라도
베르테르와 같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비관하며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았으니
오히려 그때의 사랑은 지금보다 더 지고지순하고 순수함의 결정체, 단 하나의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연출상에도 고려한 듯, 관련 기사를 찾았다.)
사랑 참 어렵다.
술 한잔 마시고 잊어버려라, 세상에 널리고 깔린 것이 여자다라고 말하는 지금 세대와 비교하기엔
그들은 너무 순수하기만 하고 그래서 더 잔인하고 지독하다.
조 연출은 "트렌드가 바뀌면서 주인공의 질풍노도와 뜨거움, 정열을 부담스러워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고 연출변화의 의도를 밝혔다. "사랑을 할 때 상처를 받을 것 같으면 미리 포기하고, 사랑을 먼저 고백하는 게 촌스런 느낌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 추구를 모던하게 풀어보자는 느낌으로 이번에 임했죠. 알베르트의 권총에 총알이 장전돼 있지만, 쓰지 않는 자제심 같은 거예요. 뜨거운 정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쿨하고, 고급스럽고 모던하게 가자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뜨겁죠. 깨끗한 수트를 입고 있지만 심장은 뜨겁게 뛰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뮤지컬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에 손잡고 가는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른 커플은 길가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고 있더라.
그 오묘한 풍경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것이야말로 죽일 놈의 사랑.
사랑은 집착, 사랑은 행복, 사랑은 증오 사랑은..세대를 막론하고 이 사랑은 참 다양한 빛깔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질문을 해보자. 베르테르의 사랑은 순정인가, 집착인가.
확실히 와 닿지 않는다면 베르테르는 칠봉이, 알베르토는 쓰레기, 나정은 롯데에 비교해 생각해도 좋다.
당신에게 칠봉의 사랑은 순정인가, 집착인가.
적어도 내겐 베르테르의 사랑은 순정이다.
공연기간: 2013년12월03일(화) ~ 2014년01월12일(일)
공연시간: 화,목,금요일 오후 8시 / 수 3시, 8시 / 토 3시, 7시30분 / 일 2시, 6시30분(월 쉼)
*단 12월18일 8시 / 12월22일 2시 공연없음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러닝타임 : 2시간 20분(인터미션 포함)
출연배우 : 임태경, 엄기준, 전미도, 이지혜, 이상현, 양준모, 최성원, 이승재, 김경하외
포스터 출처 : CJ E&M Musical 페이스북
1%의 소소한 이야기 : 엄베르테르에 대한 아쉬움은 이 영상으로 푸는 걸로..
엄기준 "내 발길이 붙어 뗄 수가 없으면" (2013) 뮤지컬 베르테르 중에서
덧_ 커튼콜 때도 사진 금지라고 들었는데 혹시나 싶어 입장할 때 물어보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마음껏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12월 5일 이후 공연은 커튼콜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베르테르 만세, 만만세. 그나저나 가져갈 분 없어도 사진 및 글에 대한 불펌은 허락하지 않음을 명시.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