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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전에 '가지 않을래?'라는 말만 들었을 때도 거절을 했었는데. 어쨌든 이거 지금 해 보지 않으면 또 언제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출발하게 되었다. 29년 인생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스노우보드를 말이다.
선배의 지휘 아래, 나를 포함한 초보자들은 예상외로 뻥 뚫린 고속도로에 일찍 도착해서는 스키복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사전조사도 안 했기에, 그냥 두껍게만 입으면 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했던 나는 청바지 위에 스키복을 그대로 입었다. 이후 이 행동이 얼마나 무자비한 아픔을 복부에 가했는지는 정말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 지금 봐도 그냥 아프다. 멋있을 거란 생각보다는 아프다는 마음이 크다. 생각외로 무거웠고, 생각외로 길었고, 생각외로 잘 안되더라. 그게 스노우보드였다. 아니면 내 운동신경을 너무 자신했거나.
이때부터는 카메라도 잘 내려놓고 가슴팍에 있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아이폰으로 몇 장을 찍었다. 사실 넘어질 때마다 찍었더니, 그 사진 양만 해도 제법 되는데.. 2장으로 대신한다. 같이 갔던 동기들은 잘만 타는데 나는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고 버둥거리기를 한 시간 넘짓. 리프트권을 끊지 않았어도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선배는 그냥 애들과 함께 리프트를 태웠다. 어쩌자고. 이러세요. 저한테.
굴러서 내려가도 오늘 안에 갈 수 있겠지란 생각이 들자 조금씩 오기가 생겼다. 나 오늘 안에 꼭 내려가고야 만다. 그때부터 혼자만의 지독한 아픔이 시작되었다. 구른다. 넘어진다. 엎어진다. 자빠진다. 부딪힌다. 못 일어난다. 낑낑거린다. 철퍼덕거린다. 나중에는 지쳐서 누워 있으니 리프트 타고 가는 사람들이 죽었냐고 물어본다. 안 죽었거든요!!!!!!!!
어쨌든 한 두 시간을 그렇게 버둥거리면서 탔더니, 집에 갈 무렵엔 얼추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에 너무 심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꽤 큰 통증과 함께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찌릿찌릿하고도 휑한 마음. 그래도 뭔가 새로운 걸 도전했다는 사실과 이걸로 나도 조금은 성장해 간다는 기분이 들어서 흡족. 물론 월요일까지 근육통에 움직이기도 어려웠다는 건 물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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