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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핀 시체꽃을 찾아서 :: 멜번 로열 보타닉 가든 Royal Botanic Gard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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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소문을 듣고 떠나는 가벼운 산책으로 뉴스에서 연신 이야기하던 '20년 만에 폈다는 시체꽃'을 보러 가기로 했다. 
시체꽃. 그 이름 참 절묘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 꽃은 어떤 모습일지.
멜버른 시티에 있는 '로열 보타닉 가든'에 이 시체꽃이 피었다.




보타닉 가든에 들어가는 입구는 여러 곳. 그중에서도 시체꽃이 모셔있는(?) 온실은 입구 E에서 가장 가까웠다.
1만 2,000여 종이 넘는 식물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5만 개체 이상의 식물이 사는 큰 식물원.
총면적 36ha의 식물원을 다 둘러보기는 무리가 있었기에 오늘은 오로지 '시체꽃'을 향해!


로열보타닉가든 홈페이지 : http://www.rbg.vic.gov.au




입구에 있는 지도를 보니 새삼 얼마나 넓은 식물원인지가 실감이 났다.
식물원이라고는 하지만, 공원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다른 공원들과는 달리 조깅이나 라이딩은 금지되어 있다.
다음번에 올 때는 도시락도 싸들고 소풍 오는 기분으로 와서 다 천천히 다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호숫가는 꼭.
오늘은 어쨌든 시체꽃을 봐야지.




처음 도착했을 때 유리로 된 온실 안은 아무도 없었다. 
시체꽃의 소문 중에는 800m 밖에서도 그 특유의 썩은 냄새가 난다던데 냄새도 전혀 나질 않고
하물며 시체꽃을 보러 온 행렬도 안내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문을 닫을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 닫았나 싶었다.
근처에 다른 일을 하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단다.

어쩐지. 온실 문 닫는 시간은 오후 5시였는데 왜 벌써 닫았을까 했다.




온실 안은 바깥 온도와는 다르게 후덥지근.
실제 정글에는 가 본 적이 없지만, 아마 그곳은 7월의 도쿄 지하철 안은 연상케 하는 이 느낌을 닮았을 것이다. 습식사우나 같은.
온실 안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식물들이 가득했다. 왕립 식물원이 처음엔 호주 토착 식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특한 열대 식물종을 들여왔다고 하더니 그 열대 식물들은 이 온실 안에 모아둔 듯했다.




그냥 봐도 '나는 열대식물입니다'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꽃.
꽃의 이미지는 거칠기보다는 부드러운 선인데, 이 꽃들은 어떤 의미로 봐도 강렬하고 세다.




물론 모든 꽃이 그러하지는 않다. 열대 정글을 헤매다 허기에 지쳐 갈 때쯤..어딘가 맛있을 것 같은 식물도 등장하지 않을까.
빨간 열매가 새콤할 것 같고, 주황 꽃은 달달한 맛이 날 것 같다. 물론 실제로 먹을 일은 그다지 없겠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지만,
안타깝게도 사실 이 꽃들의 이름은 모르겠다. 이름이 적힌 푯말이 있었는데 잘 보이지가 않아서 그냥 눈으로만 감상했을 뿐.
숨 막힐듯한 답답함이 느껴지는 온도임에도 이 꽃들은 어찌나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지.




물론 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열대와 가장 어울리는 식물들도 있다. 정확히 어느 과 어느 목인지는 모르는.
이런 식물들을 '양치류'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한데 푯말이 딱히 보이질 않아 그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조그만 잎들이 모여 이루어진 이들은 화려하고 큰 잎을 자랑하는 식물들 사이에서 뒤집지 않고 잔잔한 매력을 뽐낸다.
돌과 돌의 틈새, 지나치기 쉬운 밑바닥에서도 이들의 싱싱한 생명력은 빛난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시체꽃.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시체꽃은 정말 시체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잘못 본 것인 줄 알고 다시 그 주변을 살펴봤지만, 유일하게 제대로 된 푯말이 있는 식물은 이것뿐.
학명 아모포펠러스 타이타늄Amorphophallus titanum. 이 복잡한 이름을 뒤로 두고 시체꽃이라 불리는 꽃.
나는 이 꽃을 보고자 찾아왔는데 시들어버린 모습만을 보게 되다니 아쉽고 아쉬울 따름.




전 세계에 180여 그루 밖에 없고, 개화도 7년, 10년에 한 번 필까 말까. 이번에 멜버른에서는 20년 만에 피었다.
그런 긴 시간에 걸쳐 드디어 피어난 꽃은 3일도 지나지 않아 시든다고 하니 참 기묘한 꽃임은 틀림없다.
어쨌든 그에 대한 정보 없이 갔던 나는 시들어버린 그 모습만 보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온실 앞에 붙어 있던 글에 따르면 식물원에서는 시체꽃에서 필요한 부분을 채취해서 연구소로 보냈다고 한다.
아마 언제 다시 피어날지는 모를 다음 개화를 준비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유튜브에서 온실에서 피었던 영상이 있어 찾아왔다.
이 거대한 꽃이 소문 속의 그 꽃. 처음엔 여타의 꽃들을 생각하고 저기서 더 활짝 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저 상태로 짧은 시간 피었다 그대로 져 버린 꽃. 영상으로나마 만나본다.




아쉬움을 안고 온실에서 빠져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열대의 느낌이 가득한 식물과는 다른 식물들이 아쉬움을 달래주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좀 자주 펴줬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생각해보면 시체꽃 특유의 그 고기 썩는 냄새를 못 맡아 아쉬워한다니 좀 이상한 것 같기도?!




20년이 또 흘러야 필지 모를 꽃. 제대로 된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날씨 좋은 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마저 남은 산책을 즐겼다. 언젠가. 꼭. 그땐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길.



유입수가 좀 많아진다 싶더니 베스트라네요.
감사합니다. 메인 사진이 저래서 죄송할 따름.
기회가 되면 다음번엔 꼭 폈을 때 찍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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