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둘러앉아 맥주를 꺼내 홀짝홀짝 마셨다. 여기는 집 근처에서 벌려졌던 여름날의 작은 야시장.
집에서 입던 후줄근한 옷 그대로 동네 슈퍼가 듯 구경 나와서 잔디밭에 털썩.
생각했던 것보다 볼거리가 있지는 않아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먹고 마시고 웃었다.
볼거리가 많다면 많다. 그런데 사실 멜버른의 여름엔 '스즈키 야시장'이라는 큰 시장이 있어
이 작은 곳은 그에 비해 작은 규모라 판매하는 물건들을 그렇게 열심히 보지는 않았다. 어느 부분은 겹치기까지 해서.
곧. 시장시리즈의 하나로 스즈키 야시장도 소개할 테니 비교해보길.
이런 물건도 있고 저런 물건도 있고.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이 많긴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짐을 늘리는 것은 귀국 시 힘든 일이 되어 버린다.
지금도 충분히 짐은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최선.
그래도 이 작은 야시장에서는 굳이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괜찮다.
판매하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웃고 대화를 나누고.
사람이 너무 북적거리는 곳이 싫은 나에게는 어쩜 이 정도의 규모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시장이 참 좋다.
오후 6시가 훌쩍 넘은 시각. 여름의 저녁이 늦게 찾아온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가족들도 있다.
여름날의 야시장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추억과 여유를 선물하는 도구이다.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꺼내 든다. 저 멀리 밤을 향해 기울어지는 해는 은은한 자연조명을 만들고
어디선가 뿌뿌거리는 트럼펫 소리는 곧 있을 악단이 연주할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이 작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다 모인듯한 풍경. 여기에 같이 섞여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니 얼마나 재미난 일인가.
날이 조금씩 쌀쌀해져 얇은 옷으로 나온 나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물론 아까부터 기대를 하게 한 유랑 악단의 연주와 노래가 생각에 훨씬 못 미친것도 한 몫.
동네 사람들은 그다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작은 동네 시장이라 화려함은 없고 볼거리가 풍부하지는 않아도 사실 괜찮다.
이 여름, 재미난 일 하나 없이 흘러가는 생활이 시장 하나로 재미있어지니까.
코버그 야시장. 11월부터 12월의 금요일 저녁을 채워주던 또 하나의 추억은 이렇게 사진으로 남는다.
+호주 시장시리즈 1편, 브리즈번의 특별한 수요일 : http://sinnanjyou.tistory.com/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