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한 천억 정도가 있다면 뭘 하면 좋을까
액수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구나 ‘부자가 된다면’이란 전제가 붙은 상상은 한번쯤 해 보지 않았을까.
세계여행을 간다거나 사고 싶었던 물건, 먹고 싶었던 것들을 가득 산다거나.
그리고 평생 살 좋은 집을 마련하거나.
내가 토론토에서 방문한 이 집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돈이 많았던 어느 한 남자가 지은 ‘꿈의 집’이다.
그가 원했던 그 모든 욕망을 담아서 만들었다고 봐도 될 크고 화려한 집.
그러나 그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만든 ‘몰락의 집’
그 이름 카사로마(Casa Loma)다.
토론토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곳, ‘카사로마(Casa Loma)‘
1900년대 캐나다 최고 갑부였던 헨리 펠라트(Hanry Pellatt)경이 지은 집으로
중세 유럽의 오래된 성을 보는 듯한 이 집을 짓기 위해 3년 간의 시간 동안 300명의 인원과 350만 달러의 돈이 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내가 (토론토에서) 제일 잘 나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지.
부자의 집이라 입장료도 엄청나게 비싼 것은 아니겠지?
카사로마의 입장료는 $18.19(tax제외)로 생각보다는 약간 비싼 편.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하면 할인이 되는 몇몇의 관광지와 같은 혜택도 없다.
미리 준비해야 안심이 되는 나 같은 성격이 아니라면 직접 가서 티켓을 사도 큰 문제는 없다.
(온라인에서 티켓을 살 경우, 기념품을 20달러 이상 살 경우 15% 할인의 혜택이 있긴 하다.)
입장하면 바로 카사로마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오디오 가이드 기계’를 받는 것부터 안내를 받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념품을 둘러보는데 정신이 팔려 본 목적은 잠시 잊어버리고 만다.
이곳의 기념품은 중세시대의 기사나 판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용, 요정 등과 관련된 것이 많아
‘카사로마’의 기념품이라고 하기엔 조금 의아한 면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카사로마가 보며 중세시대 성을 연상하기에 마냥 이상하지는 않은 것도 사실.
헨리 펠라트경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기념품에 빠져있던 정신을 다시 돌려 냉큼 오디오 기계를 받으러 갔다.
친절한 직원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묻고 옛날 핸드폰처럼 생긴 기계를 하나 내어준다.
전화기 모양처럼 생긴 이 오디오 기계는 다행히 ‘무료’로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던 이유는 아마 이 오디오 가이드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사용해 본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성능과 완벽함(!)을 자랑하는 이 기계의
가장 좋은 점은 한국어가 지원이 된다는 것이다.
사용방법도 흔하게 쓰는 핸드폰과 비슷해
각 장소마다 놓여진 표지판을 보고 그 숫자를 누른 후 통화버튼을 누르면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오고 화면을 통해 관련된 사진과 그림들이 보여진다.
카사로마를 다니는 동안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편리한 오디오 기계 덕분이랄까.
한국어도 목소리 좋은 김헨리씨과 이메리씨가 돌아가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더라는.
(이름이 정말 저런 건 아니다.)
카사로마의 주인, 헨리 펠라트(Hanry Pellatt)
본격적으로 카사로마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집의 주인 헨리 펠라트경의 초상화.
군인 출신인 그는 나이아가라의 수력발전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은 사람으로
카사로마는 그의 어릴 적 꿈을 담아 만든 집이다.
어릴 때부터 꽤 큰 꿈을 꾸었구나 싶을 정도의 규모인 이 집은 98개의 방,
커다란 서재, 온실 식물원, 장미정원 등이 있는데 저택에서 마구간으로 연결하는 비밀 터널의 길이만 250m에 달한다고 한다
그의 가족이 다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남아 늘 조용했을 것 같은 이 집엔 헨리 펠라트경이 초대한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커다란 상들리에 아래에서 드레스자락 날리며 왈츠를 추고 있었을 그들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 텅 빈 공간은 좀 쓸쓸하다.
카사로마에서 가장 비싼 방, 오크룸(Oak Room)
영접실 용도로 쓰인 이 방은 놓여진 테이블, 쇼파 하나하나에 고급스러움을 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무 벽면의 조각을 위해 영국에서 특별히 장인을 초청해 했다고 하니
할 수 있는 모든 호화스러움을 가득 채워 둔 이 방에서 손님들을 맞으며 굉장히 뿌듯해 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긴 복도를 지나 온실로 향했다.
삐걱삐걱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멀리 보이는 환한 빛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돈이 많았구나 하고.
온실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식물이 한결같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온도와 빛이 늘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
분명 그 두 가지를 위해서 이 온실에도 그는 막대한 돈을 투자했을 거다.
최첨단 시설의 집약체(?) 온실(Conservatory)
그리고 그의 노력 덕분인지 카사로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온실이였다.
온실에 들어섰을 때 창문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햇살과 노랗고 빨간 꽃과 열대식물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다른 곳의 텅빈 쓸쓸함과 달리 이곳만은 따뜻해 카사로마에서 가장 밝은 꼽으라면 단연코 이 온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구하기 힘든 열대식물을 이 먼 캐나다까지 가져다 놓고 열심히 가꿨을 그(의 하인들).그래서 이 온실은 더욱 특별하다.
밤에도 빛이 들어올 수 있게 2중 구조로 만들어 그 안에 조명을 넣은 스테인드 글라스의 유리 천장,
그리고 늘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한 수중 파이프를 넣은 화단은
평소 원예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이 온실에 빛과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이도 노력했을 터.
이 곳을 구경했을 그 당시의 사람들도 나도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는다.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이 가족과 손님들이 다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었다면, 2층은 사적인 공간들이다.
내 자취방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멋진 그들만의 방을 보고 있으니, 은근한 부러움이 밀려든다.
채광도 잘 들지, 방은 넓지, 게다가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까지.
빛은 안 되고 좁은데다가 앞집이 훤히 보이는 나의 자취방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채우고 싶다, 게스트룸(Guest Suite)
서양인들의 눈에는 역시 동양에 대한 남다른 신비함이 있나보다.
이 손님방은 평소 ‘중국문물’에 관심이 많던 헨리 펠라트경의 취향을 많이 묻어나는 방으로
빨간색을 포인트로 도자기와 동양의 산수가 그려진 서랍장과 알 수 없는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나름 ‘중국풍’ 혹은 ‘동양풍’을 표현한 것 같은데 내 눈엔 좀 어색했던 것도 사실.
그래도 손님방까지 이렇게 멋지게 만들었다니, 이 곳에서 묵는 손님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까.
특별한 그 손님을 위해 만들었던 ‘윈저룸(Windsor Room)’
앞의 손님방과는 완전히 다른, 거기다가 이름까지 붙은 이 손님방은 영국 왕실의 손님을 묵게 하고자 만든 방이라고 한다.
왕족과 친분을 쌓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침대의 조각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데
왕이나 왕비가 실제로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결국 왕족 누군가가 와서 머물긴 했었다고 하니
소원은 결국 이루어진 거다.
당신에게 이 방을 선물하오, 펠라트 부인의 방(Lady Pellatt's Suite)
카사로마 전체는 사실 헨리 펠라트경의 욕망의 표출(?)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그녀를 위해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부인을 꽤 사랑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부인이 카사로마에서 가장 넓게 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가 배려했기 때문인데,
다른 방들이 묵직한 느낌의 색과 가구들이 많이 놓여있었다면,
부인의 방은 파스텔 톤과 꽃무늬의 조합으로 여성스럽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많은 방 중에서 한 곳을 골라 묵는다면, 메리 부인의 방을 꼽겠다.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헨리 펠라트의 방(Sir Henry Pellatt's Suite)
그렇다고 헨리 펠라트경의 방이 작거나 한 건 절대 아니다.
만만찮게 큰 그의 방에는 동양의 미와 고급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취향은 한 가득 묻어난다.
동양풍의 도자기와 유럽풍의 금박 접시의 알 수 없는 조화가 이루어지는 이 방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방에 비해서는 좀 작은 느낌도 받지만, 화려한 디자인에 푹신해 보이는 매트리스가 탐나는
그의 침대를 보며 발견한 것은
펠라트 경과 그의 부인은 각 방, 각 침대를 썼다는 것이다.
막상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겠지? 그런 의심이 들만도 한데
사실 그 시대의 유럽 사람들은 부부라도 각 침대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방에서 가장 특별한 것을 꼽는다면 그건 침대가 아닌 욕실의 샤워시설이다.
6개의 파이프를 이용해 물을 밀어 올린 이 구조는 욕조를 사용하던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으로
하인들이 미리 주인을 샤워를 하기 전에 물의 온도를 맞추어 놓았을 것이라고 한다.
수도꼭지가 이리도 많은데 물 온도 맞추기도 꽤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공간엔 사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좁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토론토는 그들에게 아주 멋진 선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카사로마에서 일한다는 것은 꽤 괜찮은 대우를 보장받는 일이었고,
그들 역시도 이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뽀얀 김이 서린 창문을 손으로 닦아내자, 카사로마의 빨간 지붕이 그리고 그 주변의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야 중간마다 보이는 큰 빌딩들이 그때와는 다른 풍경이겠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분명 이 집에서 바라보는 토론토의 시내의 풍경을 그림같았을 터.
헨리 펠라트는 정말 이 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치마저 완벽했던 이 집은 10년을 가지 못하고 빛을 잃는다.
세계 1차 대전 후 재정 문제에 시달리던 그는 쌓인 부채와 카사로마의 엄청난 세금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
결국 모든 재산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그는 카사로마를 떠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후의 일들은 호텔이 되기도, 무도회장이 되기도 하며 시간의 흐름에 맡겨 변해갔다.
그러다 토론토 시가 관리를 맡게 되며 지금의 박물관의 역할로 변모되었는데,
그 오픈 행사 때 참석한 헨리 펠라트의 사진을 보니 그 당시의 그도 그랬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나도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카사로마는 분명 아름다운 건물이고, 최신식의 멋진 꿈과 같은 집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화려했던 그 이야기를 뒤로하고 한 남자의 몰락을 함께 한 이 집에서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늘 내게 많은 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평생 살 멋진 집을 꿈꾸기도 했다.
분명 그도 그랬을 꺼다. 자신이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이 집에서 평생을 살 생각을.
그러나 그의 꿈은 짧은 시간에 지나질 않았고 그의 욕망이 그의 꿈의 집을 잃게 만들었다.
그 후 그가 불행한 길을 걸었는지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집을 걸어나오며 몇 번이고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많은 돈이 내 손에 들어왔다면 난 행복할까?
그리고 그 돈이 다 빠져나가는 순간 나는 불행할까?
카사로마(Casa Loma) http://www.casaloma.org
Austin Terrace, Toronto, Ontario, M5R 1X8, Canada
- 월요일 부터 일요일 9:30 am - 5:00 pm (크리스마스 이브엔 1:00까지, 크리스마스에는 휴무)
- 5월 1일부터 10월 31일엔 정원 가이드 투어가 제공되니, 이 계절에 찾는다면 참가해 보는 건 어떨까?
- 온라인 티켓 구매시 별다른 할인 혜택은 없지만, 토론토 시티 패스(Toronto City Pass)를 이용하면 43% 할인된 가격으로
CN타워,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 카사로마(Casa Lome), 토론토 동물원(Toronto Zoo),
온타리오 과학 센터(Ontario Science Centre)를 둘러볼 수 있다. http://www.citypass.com/toronto
1%의 소소한 이야기 : 이 곳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후에 길을 잃고 헤매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