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먹은 걸 세어보아요
두 그릇, 한 잔, 한 사발, 한 상, 한 개, 한 컵, 한 쪽..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났고 지금까지의 인생 절반 이상을 그곳에서 보냈다.
뭐야, 처음부터 지역감정을 운운하자는 건가? 당연히! 결단코!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래서 나는 '전라도 음식에 대한 엄청난 환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엔 책과 TV가 알려준 것들도 있지만, 요리 솜씨 좋은 지인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이 환상은 때마침 전주가 나를 초대해주어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동안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보니
여행을 하는 동안 '전주 음식에 대한 환상', '먹을 것에 관한 기대심리'는 그렇게 커졌다.
전주가 나에게 선사한 먹거리의 세계, 침을 꼴깍꼴깍 삼켜보면서 그때 먹은 것들을 하나하나 세어본다.
여기서 주의사항은 단 하나, 공복에는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1. 전주에 가면 꼭 먹어야 할 다섯 글자, 전주비빔밥 한 그릇
▲ 생각보다 현란한(?) 건물에 놀랐지만, 엄연한 전주음식 명인의 집이다.
"기사님, 어딜 가면 전주비빔밥이 맛있을까요?"
전주 소리축제의 리허설 모습을 둘러보고 난 후 택시를 잡아탔다.
주린 배를 채우고자 고민하다 내린 메뉴는 '전주'라는 이름이 붙어 하나의 대표 아이콘이 된 그것, '전주비빔밥'이다.
비빔밥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따로 있나 싶다. 그 이름 이미 뉴욕 타임스퀘어의 광고에 걸릴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것을.
그렇다면 '전주비빔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냐고? 이 또한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다.
편의점에 가보라, 삼각김밥 앞에 서서 자연스럽게 제일 맛있는 걸 고른다. 그게 전주비빔밥이다. (개인의 취향은 인정한다!)
▲ 가지런히 모인 황금빛 놋그릇
▲ 밑반찬을 보면 그 집 음식을 알 수 있다는 게 나의 지론, 이건 참 맛있었다.
그렇다면 전주에서 비빔밥을 먹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 고민의 결론을 내어준 것은 택시 기사 아저씨다.
맛집은 택시기사 아저씨가 꿰뚫고 있다! 라는 이야기를 믿는 나기에 전주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그건 어디가 맛있어요? 어디가 좋아요? 여기 괜찮나요? 그거 맛있어요? 를 묻고 또 물었다.
다행히도 전주의 친절한 택시기사님들은 귀찮아하시지 않고 대답을 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색이 너무 고와 슥삭 비비기 미안했달까
그렇게 찾아간 식당에서 14종의 밑반찬과 함께 전주비빔밥이 뒤이어 등장했을 때, 놋그릇에 담긴 색의 조합에 감탄이 나왔다.
다양한 나물과 채소, 고기, 달걀이 만들어내는 이 색감은 한국 음식 중에서 가장 다양한 색의 조화를 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닌가.
물론 비빔밥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의 하나다.
집 냉장고에 남은 반찬과 찬밥을 대접에 털어 넣고선 고추장 한 숟가락 넣어 슥슥 비벼 먹는 것도 비빔밥이고
학창시절 어디선가 가져온 양푼에 각자가 가져온 도시락 반찬을 한대 모아서 비빈 것 또한 비빔밥이다.
이렇게나 비빔밥은 가까운 음식이기에 이 맛에 대해서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면서 극찬하기엔 새삼스러운 것도 사실.
그러나 콩나물과 육회가 들어가는 특징을 빼놓더라도 '전주'이기에 특별한 이 비빔밥, 참 맛있다.
[전주비빔밥을 맛본 곳, 가족회관 http://www.jeonjubibimbap.com/ ]
- 전주비빔밥 명인 1호, 무형문화재 김년임 할머니가 딸, 손녀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전통 있는 전주비빔밥 전문점.
- 외관이 생각보다 현란(?)해 의심의 눈초리도 잠시, 깔끔한 밑반찬과 함께 나오는 전주비빔밥 맛은 최고.
- 육회 비빔밥은 15,000원, 전주비빔밥은 12,000원. 14종의 밑반찬이 나와서인지 평소 먹던 비빔밥에 비해 비싼편.
- 1% 소소한 이야기 : 전주비빔밥에도 육회가 들어가긴 합니다.
2. 뚝배기 가득 넘치는 소박한 정, 콩나물국밥 한 그릇
▲ 국밥에 밥이 있음에도 또 나오는 밥은 이곳만의 정인 듯.
전주라는 이름이 붙어 유명한 또 하나의 음식이 바로 콩나물국밥이다.
비빔밥과 함께 전주 이곳저곳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보니 어디서 먹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도 일.
한참을 고심하다 콩나물 밥의 발상지라는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여기라면 충분히 맛있지 않을까 하고.
▲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남부시장 식은 달걀 수란이 따로 나온다.
콩나물이 숙취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고 전날 전주 막걸리에 이미 뜨끈한 무언가를 원하고 있던 터라
국밥의 국물이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감탄사.."으음~"
결코 화려한 음식도 아니고 MSG에 길들어진 내게 맛깔 난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모호한 이 국밥 한 그릇이
나에게 준 건 아마도 소박한 음식이 주는 따스함이 아닐는지.
▲ 이렇게 먹어도 저렇게 먹어도 따스한 행복
그렇게 잘 먹었다, 생각하고 흐뭇하게 생각하고 얼마 안 되어서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전주역으로 향하는 길에 올라탄 택시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 중에 따로 나오는 달걀 수란은 국밥에 넣어 먹기보다는
그대로 콩나물국밥 국물을 2~3숟가락 넣고 김을 잘라서 후루룩 먹어야 제맛이란 것.
국밥에 그대로 넣어서 먹은 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따로 먹는다는 걸 놓치지 말 것!
참고로 아저씨가 말씀하신 건 남부시장 방식이고 '삼백집'이란 유명한 콩나물 국밥집은 뚝배기에 같이 나온다고.
[콩나물국밥을 맛본 곳, 그때 그 집]
- 아침부터 한옥마을 근처 '삼백집'엔 무슨 줄이 그리도 긴가 했더니 소문난 콩나물 국밥집이었다.
- 콩나물국밥 한 그릇은 딱 좋은 5,000원, 모주와 함께 먹어도 좋다니 다음번엔 꼭!
- 1% 소소한 이야기 : 막걸리를 먹고 난 다음 날 해장으론 콩나물국밥이 제격!
3. 바삐 걷는 마음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자, 황차 한 잔
▲ 가던 걸음을 멈쳐 세우게 만든 골목길
골목 사이사이를 들여다보며 걷던 중이었다. 발길을 멈춰 세우고 카메라를 들게한 이 골목길에서 만난 곳이 교동다원이다.
지친 다리를 달래줄 겸, 따스한 차 한 잔 마실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으로 한옥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이야말로 한옥마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을 가진 곳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이 닿아 만든 한옥만의 반짝거림에 둘러 쌓여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해 주시는 차를 주문했다.
▲ 분위기에 취하고 차 맛에 취하고
분위기에 이끌려 들어온 사람들이 몇 가지 밖에 없는 가짓수에 짐짓 당황하며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이곳에서 파는 건 오로지 차. 그것도 시원한 것은 없고 따뜻한 차만을 판매하기에 아쉬운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차를 직접 우려내면서 마시는 이 과정이야말로 어디서도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맛이다.
▲ 함께 곁들인 우리 밀 과자는 은근한 중독성
이날 주문한 건 황차였다. 녹차와 홍차의 중간쯤이란 설명이 적절할 이 차의 특징은 소화를 촉진시키고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것.
전주를 돌아다니는 동안 계속 배가 불러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몸이 가장 필요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주시는 대로 차를 우려내고 두 손에 가지런히 잔을 쥐고서 창가를 바라보며 한잔, 두잔..
서울에서 마셔대던 커피맛이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맛은 여유가 첨가되어 기분 좋게 했다.
[차 한 잔 마시고 간 곳, 교동다원]
- 황차는 5,000원, 우리 밀 과자 한 봉지는 3,000원.
- 저 조금만 잔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찻주전자와 보온물병이 같이 나와 몇 번이고 우려 마시는 형식
- 1% 소소한 이야기 : 주인아저씨가 사진을 찍어주신다며 몇 컷이고 잘 나온 사진을 위해 노력하셨으나 핀이 나갔...
4. 한잔하고 흥에 취해, 막걸리 한 사발
▲ 막걸리는 무료, 안주는 유료
전주 소리축제를 구경하는 동안 풍겨오는 파전 냄새와 막걸리 향에 얼마나 콧구멍을 벌렁거렸는지.
축제공연이 펼쳐지는 소리주막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몇 가지 안주를 팔고 무료 막걸리를 제공하고 있었던지라
마음만 먹으면 몇 잔이고 마실 수 있었겠지만, 다음 장소를 위해 바삐 가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쩝쩝.
▲ 기억하라! 처음 나온 안주는 기본에 불과하다는 것을!
▲ 이번 여행은 좋은 친구가 함께해서 더욱 즐거웠다.
그대로 전주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지 않고 떠났으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겠지만, 다행히도!
좋은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막걸리 한 잔(이라고 쓰고 알딸딸해질 때까지)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충분했다.
앞서 말한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처럼 전주에서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곳 또한 여러 곳이기에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적어도 세 주전자는 시켜야 나온다는 안주의 끝판왕(?)의 실체를 보기도 전에 포기를 외친 건 안타까운 일!
▲ 다 마시지 못한 남긴 막걸리 주전자가 아쉬워..
알딸딸한 술기운에 젖어 기분 좋게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던 낮의 풍경과는 다른 고요함이 좋았다.
평소라면 무섭다고 투덜거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곁에는 같이 술기운이 오른 친구가 있어
알싸하게 남은 막걸리의 잔향과 함께 한옥마을의 정취에 또 한 번 취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던 그런 밤이었다.
끄억~ 좋다.
[막걸리 한잔 하러 간 곳, 전주명가]
-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따라오는 여러 가지 안주 17,000원 이후는 주전자 당 15,000원
- 삼천동에 가면 거의 모든 막걸리 집이 TV에 방영된 듯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었다.
- 1% 소소한 이야기 : 이 집은 최불암 아저씨가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에 나왔더라는.
5.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든든한, 한정식 한 상
▲ 건넛방에서 밥 먹는 연인들을 보면서 기다리는 내 배가 꼬르륵..
짧은 해외생활을 하면서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한정식'은 꼭 먹어야지 생각했던 음식이다.
밑반찬에 대한 갈증이 있던 그 시절, 상다리 부러지라 나오는 반찬들은 황홀하다는 표현 외엔 어떻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한정식을 전주에서 먹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그런 일이었다.
실제로 10, 20만원 하는 비싼 한정식도 많지만(분명 다른 의미로 맛있을 거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그것과는 달랐다.
그저 한상 가득 차려진 것만으로도 엄마 밥상이 생각나는 그런 밥상이 너무너무 그리웠달까.
[한정식을 먹으러 간 곳, 다문]
- 이 멋진 한정식은 10,000원
- 오후 4시에서 5시 30분 사이는 쉬어가는 시간인지라 영업을 하지 않으니 조심!
- 1% 소소한 이야기 : 해가 질 무렵 찾았던지라 방에 켜 진 불빛 아래 밥 먹는 사람들 모습이 그림 같았다.
6. 전주에서 떠오르는 신흥강자, 초코파이 한 개
▲ 전주에서 그 어느 명품백보다 더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풍년제과 종이가방
전주에 떠오르는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으니 바로 풍년제과 초코파이다.
주황색 PNB라고 쓰여진 간판 아래 기나긴 줄이 서 있는 것을 한옥마을에서 발견한다면 그곳이 풍년제과의 분점으로
본점과는 달리 작은 규모의 가게이기 때문에 초코파이 이외의 빵은 보기가 어렵고 그곳에 있는 이들도 초코파이를 위해 줄을 섰다.
(흡사 JYP를 생각하게끔 만드는 이름이다. JYP의 수지 같은 존재인가 이 초코파이는!)
▲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럽다
풍년제과의 시작은 사실 전병(센베)부터였지만, 이름을 알리게 한 역할은 초코파이가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루에 5,000개 정도의 초코파이가 팔리고 있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도 하다.
시중에 파는 초코파이와 비교하면 크기가 조금 더 크고 겉이 바삭하다. 맛은 조금 더 진득한 단맛. 그리고 확실히 맛있다.
[초코파이를 사 먹은 곳, 풍년제과]
- 한 개 가격은 1,600원으로 오뤼언이나 롯뒈에 비하면 확실히 비싸다. 그러나 맛있다.
- 한 사람당 5개씩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보다 많이 살 수 있었다.
- 1% 소소한 이야기 : 한 개 357.2kcal.
7. 전주에서 먹는 건 뭐든 좋아, 맥주 한 컵, 술 빵 한 쪽
▲ 세계 최초(?!) 홍삼 맥주
낮술의 매력을 아는 이가 이번 여행을 함께했기에 우리는 전주 한옥마을 어딘가에 철퍼덕 앉았다.
근처에서 사 온 술 빵과 세계최초라는 홍삼 맥주를 한 잔 들고서 말이다.
전주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라거나 뭔가 특별한 특징이 있다거나 하진 않아도 이곳이 주는 매력이 더해지고
바삐 움직이는 이들 사이에 여유롭게 홀짝거리며 빵을 뜯어 먹고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특별해진 순간이었다.
전주에서 먹는 술 빵은 우리 집 근처에서 파는 것임에도 어찌나 맛있던지 갓 쪄낸 빵을 샀기 때문인지
처음 마셔보는 홍삼 맥주가 함께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좋은 이와 함께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맛있었다.
아마 이곳 전주에서 먹는 건 뭐든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슬며시 들었다.
전주는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고 나는 행복함에 젖어 먹고 또 먹었다.
통통하게 부른 배를 두들기며 기분 좋게 있다 보면 "이것도 먹어봐야지~"라고 계속 말을 걸어오는 전주 덕분에
집에 돌아와 체중계에 오르고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행복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안에 고이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전주에서 먹은 걸 다시금 세어본다.
지금 봐도 참 많이 먹었네. 근데 또 먹고 싶네.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의 지원으로 쓰여진 2013년 10월 5일부터 6일까지의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