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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단풍은 참 곱기도 했었지 :: 무계획 설악산 단풍놀이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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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많이 철이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 설악산 단풍놀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막상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시작했는데 밖에서는 흰 눈이 펄펄 오기 시작했고.
주변의 몇몇 분들에게 단풍놀이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니 다음 년 가을에나 써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지난 간 이야기라도 '일기'처럼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기억을 못 하게 된다는 거다.
조금이라도 기억이 날 때 몇 글자 끼적여두는 것이 다음 년 재탕(?)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또 준비했다. 지난번 1편에 이은 기대할 사람이 없을 2편을. ^^;;
지난 줄거리는 관련 포스팅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관련 포스팅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무계획 설악산 단풍놀이 1편




전날 흐린 날씨로 잔뜩 기대하고 갔던 우리 일행은 실망하게 한 날씨는 둘째 날이 되자 맑아졌다.
밤새 내린 이슬이 촉촉하게 낙엽을 적시고 아침 햇살이 반짝이기 시작하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하던 제대로 된 단풍놀이가 아니냐며 다들 신 났다.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설악산을 오를 생각을 했다.
물론 설악산의 높이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고 힘들면 그냥 그 중턱까지만 올랐다가 다시 하산하면 될 것 같았다.
등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단풍 구경하다 보면 끝까지 올라가기도 무리일 것이라 생각도 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린 설악산에 전혀 올라가지 못했다.



설악산 케이블카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흠.

케이블카가 일단 문제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이 케이블카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 영업방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사전예약'이란 거다.
아침 일찍 와서 미리 표를 끊는 게 가능하단 말이었는데 국립공원 매표소와 달리 정문을 지나쳐 안에 들어가야 
케이블카 매표소가 있는 구조니까 당연히 '케이블카 표를 사기 위해선 입장료를 두 번 내야 한다'는 걸로 이해한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었다.

케이블카 예매를 한다고 하면 입장료 없이 들어가서 표만 끊어서 나올 수가 있는 것.
이 생각도 못 한 사전 예약을 절대 아니라고 우겼던 나는 다른 분들이 설악산을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고
같이 갔던 일행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들었던 슬픈 기억을 남겼다.
모르면 그냥 말을 말아야지, 우기면 안되는 거다.




어쨌든 뜨끈한 호텔 온돌방에서 뒹굴다가 느긋하게 나온 우리는 케이블카 없이 설악산을 오르겠다는 의지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그냥 주변이나 돌아다니다가 차 시간에 맞추어 집에 가는 것이 제일이란 '무계획다운 계획'을 바로 짜냈다.
입구를 통과하고 왼편으로 그냥 빠졌더니 '맨발로 느끼는 숲'이 나왔다. 설악산에 이런 곳이 있었군.




맨발로 걷는 숲의 반대편은 설악산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무계획 멤버들에게 이름 난 명소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하고 그냥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숲길을 걷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대청봉에도 못 가는데 용추계곡이 무슨 소용이겠어. 아무리 봐도 참 한량들이다 싶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렇다고 해서 맨발로 숲을 걸은 것도 아니다.



 설악산 울산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ㅎ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것 하나, 울산바위.

그래도 이 맨발로 걷는 숲의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슬픈 전설을 가진 울산바위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가 있는 것.
울산바위로 말하자면 '은비까비의 옛날 옛적에'나 '배추도사 무우도사'와 같은 애니메이션에도 소개된 바 있던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모집으로 가던 중 경치가 좋아 좀 쉬다 갈까 하면서 눌러 앉았다가 이미 금강산 바위 모집이 끝나서
여기 풍경도 좋으니 그냥 이곳에서 살아야겠다' 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날씨가 흐렸다면 먹구름에 제대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을 텐데 다행히 날이 좋아진 터라
그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른 바위들에 비해 커서 움직임이 느렸다는(?) 전설처럼
금강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설악산에 자리를 잡은 덕에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울산에서 올라왔나? 왜 울산바위지...?



 다람쥐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른다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것 둘, 다람쥐

실로 다람쥐는 오랜만이다. 등에 선명한 삼선슬리퍼와 같은 줄무늬,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한껏 등을 구부린 모양새.
외래종인 청설모에 의해서 다람쥐가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덩치도 더 크고 힘센 청설모가 다람쥐가 먹을 먹이까지 다 먹으면서 다람쥐의 개체 수가 줄고 있는 것.
그래서 오랜만에 보는 다람쥐의 모습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그 날쌘 몸놀림을 카메라로 찍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연샷신공(?) 어쨌든 간에 몇 장 담아냈는데 너무 귀엽다.
두 손을 모아서 오물거리는 모습은 언제봐도 사랑스럽고. 이런 말은 너무 교훈적인 이야기지만,
자연환경이 계속 잘 유지되어서 이런 다람쥐를 동물원에서만 보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로미오 소나무와 줄리엣 단풍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것 셋,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탁월한 재주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왜.
설악산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신흥사에 들렀다. 특별히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님에도 절에 오면 기분이 편안해진다.




기와 사이로 살포시 내려앉은 은행잎과의 조화, 엉겨붙듯 돌로 만든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이 만들어내는 조화.
인공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이런 자연적인 움직임이 설악산 단풍놀이의 가장 매력적인 면은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직선으로 단조롭게 만들어진 건물이었다면 아름답단 생각을 하지 못했을 터인데 
울긋불긋 물든 설악산의 풍경과 그 속에 포옥 안긴 경내의 풍경은 이렇게 감탄을 하게 한다.



 부처님 귀는 완전 큰 귀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것 넷, 14m가 넘는 통일대불

지난가을에 갔었던 나라에도 커다란 대불이 있었는데 설악산에도 못지 않은 아주 큰 부처님 동상이 있다.
이 안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이번엔 안까지 구경하지는 않았다.
대신 밖에 서서 대불과 함께 예쁘게 물이 든 산의 모습을 바라봤을 뿐.
문득 동상 앞 잔디밭에 앉은 아주머니 두 분의 모습이 지금 이 풍경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롭네.




 딱 내가 좋아하는 빨강이다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것 다섯, 눈부신 빨간 단풍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설악산 단풍놀이를 가기 전까진 '왜, 굳이 거기까지 사서 고생을'이란 마음을 가졌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꺼리는 터라 뉴스에서 보는 단풍구경 행락객들을 보고 있자면 지레 기가 뺏기는 기분이었달까.
그런데 이건 서울에서 보던 것과 차원이 다른 단풍이란 것에 한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이 빛깔! 이 생기!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모이는구나. 사진을 찍는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새빨간 단풍이었다.
가을 낙엽과 노란 은행잎도 서울에선 종종 보지만, 이런 새빨간 단풍이 가득한 건 다른 세상인지라
그 화사한 빛깔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셔터를 누르고 다음에 또 오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색색깔 맞추어가며 단풍잎, 은행잎을 모으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분명 그렇게 모여 누군가의 책 사이에 곱게 들어가 이번 해의 가을 추억으로 남겨질 이야기가 될 거다.
땅에 떨어진 고운 단풍잎을 하나 주워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설악산에서 가득 쌓은 가을 추억도 담아 본다.




신흥사를 오고 가는 길 주변엔 하나하나 소원을 빌어 쌓아놨을 돌무더기가 많다.
돌 하나에 건강을, 돌 하나에 행복을, 돌 하나에 사랑을. 그렇게 소원을 빌어 쌓아 올린 마음을 보고 있자니
단풍놀이를 즐기러 온 이기적인 사람들로 인해 짜증으로 가득 찼던 모난 마음이
그저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런가 보다 하면서 스르륵 유해지게 하는 효험이 생기는 듯하다. 




단풍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누군가가 마저 챙겨가지 못한 추억이 발밑에 하나, 낙엽 하나의 추억은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서울에서 설악산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긴 하다. 버스로만 3시간, 잠을 자고 또 자야 도착하는 거리.
그렇지만 제대로 보고 제대로 즐기고 돌아가는 길 가을의 마무리를 제대로 한 것 같아 기분이 흡족해졌다.
다음 년 가을이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그때까진 설악산을 수놓은 울긋불긋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며
그렇게 한해를 또 기다려 봐야지. 근데....벌써 겨울이네.



Copyright © 2013 신난제이유 / 사진 및 글에 대한 불펌을 금합니다.
Camera : Panasonic GF-1 / G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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