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백팔 배의 경험
'봉선사'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템플스테이를 계획했다.
그래도 그것은 상도덕(?)이 아니지 않을까란 생각에 그들을 만류하고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어느 주말 절로 떠났다.
불교에 귀의할 마음도 무언가 종교의 힘을 빌려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것도 아닌 '여행'의 기분으로 다녀왔다.
눈이 다 녹지 않은 절의 풍경은 복잡하던 마음을 차분하게 다듬어주고 그렇게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 요즘 버스는 깔끔하기도 하지
봉선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템플스테이란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무언가 산 속 어딘가에 있는 절을 생각했던 듯도 하다.
그러나 친구가 자주 간다는 '봉선사'란 이름의 절은 7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탄 후에
슬쩍 선잠을 자다 보면 도착하는 마지막 정류장에 위치한 절이었다.
▲ 삶은 단 한 순간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나무에 달아놓은 구절 하나하나 읽으며 템플스테이를 안내하는 사무실로 향하는 길,
언제 내렸는지 모를 눈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시의 눈은 질척질척하고 이래저래 밟혀서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이곳의 눈은 그래도 깨끗했다.
기와지붕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눈은 곡선을 타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니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 친구가 추천(?)한 체험형...-ㅁ-
템플스테이는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크게 나뉜다.
그저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서 뒹굴다가 갈 요량으로 휴식형으로 하고자 했건만
절언니 친구 쮀는 어차피 큰 차이 없고 둘 다 '백팔 배'는 해야 하니 그냥 체험형으로 하라고 추천해 주었다.
백팔 배를 피하고 싶었던 친구의 마음을 단박에 읽어낸 그 센스에 감탄하며 어쩔 수 없이 체험형으로.
▲ 새벽 4시에 기상........;;
체험형과 휴식형은 큰 차이가 없단 친구의 말을 믿었건만.. '불교란 무엇인가?', '스님과의 다담', '숲속 걷기 명상'이 있었다.
아랫목에서 뜨시게 등을 지질 생각만 하고 있던 나는 때아닌 불교대담 시간에 놀랐다.
졸지 않을지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고. 킁. 게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 일정.
요즘의 생활리듬으로는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일정이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 입을 옷(누빔 옷이라 따셨다)을 받아들고 사무실 건너편의 숙사로 갔다.
새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긴 했는데 정말 예상보다 더 깔끔하고 방마다 욕실이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뭔가 상상 속의 템플스테이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르며 무서움을 떨쳐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봉선사는 신축인지라 아주 깔끔해서 흡족했다.
▲ 창호지를 바른 문은 오랜만이다
끼익 덜커덩..하고 열리는 문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딘가에 개어놓았던 기억이 떠오를락 말락.
마지막으로 들어본 것이 언제였더라 생각하며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어느새 잠들었다.
누빔 옷의 감촉과 깨끗한 이불의 촉감, 온돌방의 온기, 그리고 친구들과 두런두런 나눈 이야기가 있던 밤이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 무엇을 했나...
잠이 들 때도 불안했다. 과연 새벽 4시에 나는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디서든 잘 자고 잠귀가 밝은 편인지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백팔 배를 하러 가고 있더라는. 스스로에게 감격했다.
사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도 백팔 배를 하는 것도 생각보단 어렵지 않았다. 게다 백팔 배를 동영상을 보면서 할 줄도 몰랐고.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동영상의 구절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하다 보니 힘든 건 없었다.
▲ 단주(라고 쓰고 술 만드는 시간인가 했다..) 만들기는 제법 간단!
정작 내가 힘들었던 것은 불교란 무엇인가와 아침 명상 시간이었는데..
오랜만에 강의 아닌 강의를 들으려니 저녁을 먹고 난 후 찾아오는 배부름과 온돌방의 따스함이 뒤섞여 잠이 쏟아지느라
계속 감기는 눈을 부릅뜬다고 나와의 싸움 아닌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 너네도 잠오지? 나도 와..
백팔 배를 끝내고 돌아와 한 시간 정도 다시 골아떨어진 직후 나선 아침 명상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인 국립수목원을 걷는 것이지만, 떨치지 못한 잠기운에 괴로웠다.
산은 산이오, 잠은 잠이로다....;ㅁ;
알고 보니 이날은 동지였다.
날을 맞추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찾은 이 날은 동지였다.
졸린 기운을 겨우 떨치고 슬 수목원의 좋은 기운에 흐뭇해져서 절로 돌아오니 한창 동지팥죽 만드느라 부산하더라는.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밥을 먹은 건 총 3번, 마지막 점심으로 준비된 것은 동지 팥죽이었다. 앗싸.
▲ 3,000원에 테이크아웃 가능! ㅎ
절이 붐비는 시기는 '부처님 오시는 날'과 '동지'라고 하더니만, 가히 많은 사람이..
분명 전날엔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절에도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없었는데 동짓날은 달랐다.
동짓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는지 배가 고파서였는지 팥죽을 세 그릇 먹고 나니 기분이 매우 흡족...
뤅엔뤅통에 넣어 3,000에 판매되는 팥죽도 다음 날 먹으려고 사 들고 돌아왔다.
▲ 처마 끝을 바라보는 여유
나는 딱히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템플스테이를 하면서도 큰 부담이 없었던 듯.
(절언니 쮀의 말에 따르면 실제 템플스테이에 가장 많은 참여하는 사람들은 무교라고.)
친구 하나는 다음 날 다리가 부들거렸으나 생각보다 백팔 배도 어렵지 않았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절밥도 내 취향이었다.
오랜만에 빵빵거리는 차에서 벗어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도 시선을 뺏는 현란한 네온사인도 없어
마음을 조용히 내려놓고 기분좋게 하룻밤 묵고 돌아왔다.
물론.. 다음엔 꼭 휴식형으로. 친구여..-_-
그나저나 절에서 이거 보고 나 혼자키득거린..관계자외 출입금지가 아닌 스님외 출입금지.
봉선사 템플스테이 http://www.bongsuns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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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 Panasonic GX-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