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청동에 있는 아지오(AGIO)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고 봄이 조금씩 깊어만 가는 주말이었다.
개나리가 없었다면 조금 아쉬웠을지도 모르는 그 봄날, 오랜만에 삼청동을 찾았다. 이제 과장이 되었음에도 입에 붙은 전대리가 익숙한 대학후배 1과 나와 비슷한 면이 은근 많은 쏘라고 지금부터 칭할 대학후배 2와 만났다. 전대리가 말한 '애플 시나몬피자가 맛있는 집'에서.
▲ 음식은 둘째치고 분위기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그녀들과 나는 '여성스러운 취미를 가진 모임'을 간혹 가진다.
블로그의 문체와 달리 나는 꽤 털털한 말투를 가진 성격이고 생김새도 제법 그와 어울린다.(여성미는 눈곱만치도 없...다고까진 하지 말아야겠다.) 그런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코바늘. 귀여운 외모와 달리 제법 털털한 전대리는 꽃꽂이를 배웠고. 역시나 털털한 쏘의 경우에는 지금도 꾸준히 야생화 자수를 놓는다.
▲ 이런 창가를 집에다 옮겨놓고 싶다
참으로 여성스러운 취미를 가진 우리는 언젠가 한 번 엄청난 수다와 취미생활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그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 생활에 찌든 세 명의 여성은 안타깝게 이번 모임에서는 취미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찌든 이야기'를 주고받기 바빴다. 나와 쏘는 엄청난 회사 욕을. 그리고 전대리는 자신의 임신 후 변화를.
그랬다. 예전에 꽃집소녀 전대리로 한번 내 블로그에 등장한 적 있는 그녀는 이제 예비 엄마가 되었다. 꽃집소녀가 꽃집 엄마가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어려 보이기만 한 앳띤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임신 후 몸의 변화 및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대학후배가 어느새 인생선배가 되고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어른의 세계를 걷고 있는 그녀가 참 신기하다.
▲ 파스타는 조금 밍밍하고, 피자는 제법 먹을만하다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도 떠들었다. 뱃속에 아가야는 엄마 친구들은 참 욕을 잘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정도로 쏘와 나는 당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클라이언트의 압박감. 전대리가 느끼는 배의 묵직함과 비슷한 무게일까 그런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 떡꼬치는 무언가 빠진듯한 맛
파스타와 피자를 순식간에 해 치우고 폭풍수다를 떨다가 나와 삼청동의 유명하다는 그 '쌀집에서 파는 떡꼬치'를 하나 사서 나눠 먹고. 임산부 운동시킬 셈은 아니었는데 삼청동을 거닐었다. 오랜만의 주말 외출은 날씨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따뜻했다가 추웠다가 아주 난리가 난 그때의 정신상태와 닮아있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4월 초 나는 무척이나 고달팠다.)
▲ 인사동 경인미술관
우리는 걷고 걸어 인사동으로 향했다. 쏘의 야생화 자수 선생님의 전시가 있기 때문인데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베개, 도시락 가방, 옷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도 좋았지만, 사실 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3월을 그리고 4월을 보내고 있는 내겐 경인미술관 내 기와와 장독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초록색과 흑갈색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빛깔이 참 소박하게 예뻤다.
▲ 우리의 삶에 키스를
그렇게 주말의 시간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제멋대로인 날씨와 함께 흘러갔다. 줄곧 잠으로 채운 주말을 보내던 내게 후배들과의 만남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다시 월요일이 찾아오긴 해도 그래도 제법 근사한 주말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나와 비슷한 사정을 가진 쏘와 같은 고충을 털어놓기도 하고 곧 태어날 왕자님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도 전대리와 함께 나누고. 참 즐거운 어느 봄날이었다. 소소하게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