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빨리 내달리기 시작했다.
배에서 여유를 부리며 웃고 있던 그때까지도 깨닫지 못했던 한 가지는, 내가 뱃멀미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교 때 후쿠오카 여행을 배로 다녀오면서 겪었던 그 아찔한 경험을 내가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창문에 거칠게 튀는 파도의 파편, 격하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저 파도에도 환호성을 하는 무서운 사람들(!!)과 심통 난 소녀
선실 안에 있는 나는 좌우로 요동치는 배가 무섭기만 할 뿐인데, 물방울이 거칠게 튀어 오르며 집어 삼킬듯한 파도를 환호성 지르며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후쿠오카의 돌아오던 배 안에서의 공포감이 슬며시 밀려오며 이대로 고래를 볼 수 있는 것인지 걱정이 슬 되기 시작했다.
아까 마신 맥주가 뱃멀미를 배로 만드는 듯했다. 마시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머리도 속도 모두 핑글핑글 돌아 정신이 없을 무렵, 배의 스텝이 봉투를 건네준다. 안은 은빛의 반질반질한 봉투의 정체는 속이 메슥거려 토하고 싶은 경우를 위한 것인데 일단은 꼬옥 잡아 들고 힘겨울 때마다 바라봤다. 이 봉투를 쓸 일이 제발 없게 되길 빌며.
힘든 와중에서도 서로를 챙기던 인도가족
이윽고 스탭의 손에 이끌려 한 인도 가족이 선실로 들어왔다. 나보다 상태가 심해 보이던 이들은 뱃멀미가 익숙치 않은 듯 가족 모두가 힘들어 보였는데, 고래를 보고자 웃으며 출발했을 이들 여행은 결국 고래가 있는 곳까지 왔음에도 선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선실에서 내내 쉬어야만 했다. 앞서 말한 격리실의 의미는 바로 나같은 뱃멀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 ㅠㅠ 뱃멀미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래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배가 멈추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뱃멀미도 배와 함께 멈추었다는 것. 파도는 여전히 제법 세게 울렁거렸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얼굴로 느끼니 아픈 머리도 슬며시 나아져 갔다. 이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고래에 신경을 쏟을 차례. 스탭이 만지고 있는 기계로 고래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일까 싶어 쳐다보았지만,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거친 파도, 저 멀리 골드코스트의 고층 빌딩이 아련하게 보이는 광활한 바다. 넓다는 말 외에는 그 무엇도 설명하기 어려운 바다에 서서 고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고래가 어디에서 그 멋진 모습과 함께 물을 뿜으며 등장할지 알 수 없는지라 스텝의 말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바다에 집중할 밖에 없었다. 고래를 오늘 안에 못 만나게 되어도 투어 회사 쪽에서 보장서비스를 해 준다곤 하지만 뱃멀미를 뚫고 여기까지 왔으니 꼭 보고 가고 싶었다.
고래를 찍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두둥! 드디어 고래가 등장했다. "11시방향!" "9시방향!" 스탭이 고래의 위치를 연이어서 외쳐대기 시작했지만, 내가 고개를 돌리고 카메라를 들었을 때 이미 고래는 물을 다 뿜어내고 잠수를 해버린지라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짧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는 곧 사라지는 고래이기에 사진에 남은 건 오로지 물기둥, 물기둥, 물기둥...
그래서 보조찍사 우쿠의 사진을 그대로 빌려 왔다. 그나마 우쿠의 카메라로는 고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살펴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우리가 본 이 고래는 혹등고래 혹은 험프백 고래라고 불리는데 몸길이가 11~16m. 그러나 내 눈으로 본 것은 지느러미와 꼬리 일부분이라서 실제로 그 큰 크기가 실감이 잘 나지는 않았다.
혹등고래 [ humpback whale ]
몸길이 11∼16m, 몸무게 30∼40t이다. 몸 전체에 사마귀와 같은 기생충이 많이 붙어 있는데, 그것이 탈락되면 흰색의 자국이 남는다. 수염은 좌우에 각각 약 350개나 나 있다. 수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너비 30㎝, 길이 70㎝가 넘는 것도 있다. 머리 부분은 편평하고 중앙과 바깥면에는 융기된 돌기가 있다.
분기(噴氣:고래가 물 위로 떠올라 숨을 내쉬는 것)는 V자형을 이루며, 높이 3m로 다른 수염고래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고래는 영리하여 포경선의 습격을 받게 되면 외양으로 도망가기 시작한 뒤 점점 회유의 방향을 바꾸어 다른 해상으로 이동한다. 호흡의 수는 1시간에 10∼20회이다. 주로 크릴새우(남극새우)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 번식기는 겨울이고, 임신기간은 약 1년이며, 몸길이 4.5∼5m의 새끼를 낳는다. 태평양·대서양에 분포한다.
[출처] 혹등고래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4553&mobile&categoryId=200000653
혹등고래가 2~3마리가 바다 이쪽에서 짠! 저쪽에서 짠! 하고 예고도 없이 나타나기에 모든 배에 올라탄 모든 관광객은 정신이 없었다. 운이 좋다면 고래가 꼬리를 들어 바다를 내려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멋지게 고래를 꼬리를 들어 인사를 해 주었다. 문제는! 내가 못 봤다는 것이지만. (털썩.) 이후에 혹등고래 곁을 같이 폴짝폴짝 점프하며 헤엄치는 돌고래도 볼 수 있었고! 돌아갈 때 몇 번이고 물기둥을 뿜어내는 고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고래 투어 홈페이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멋진 고래의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이날 파도가 쎄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고래를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가 없고 생각보다 빠르게 헤엄쳐서 제대로 된 고래의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기에 많이 아쉬웠다. (참고로, 고래 투어는 6월에서 10월 사이에 이루어지는데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가 고래 투어의 시작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듯. 파도가 잔잔한 날 8월 중순쯤이 가장 좋은 시즌 같다.)
운이 좋으면 가까이서 고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 http://www.whalesinparadise.com.au/gallery
고래만큼이나 멋졌던 노을 지는 골드코스트
재빠르게 지나간 고래와의 시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해는 어느덧 늬엇늬엇 넘어가고 저녁이 찾아왔다. 골드코스트라는 이름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을 지는 풍경이 금을 뿌려놓은 듯 반짝거려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골드코스트의 저녁 무렵의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고래를 더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랠 줄 만큼..
배는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침에 우리보다 더 재빠르게 파도를 가르며 달려갔던 빨간 배는 투어가 끝난 듯 미리 도착해 있었다. 배가 도착하고 스텝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침에 사진을 찍어주던 스텝이 배를 묶고 유일한 여자 스탭은 배웅 인사, 재미난 말 솜씨로 고래투어를 신나게 만들어 준 스탭은 뒷정리를..
흔들리는 배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던 스텝들에게 박수를!
오는 길 내내 다시 찾아온 뱃멀미에 또 한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고래를 보기 위해서 뱃멀미를 견뎌내야 했던 자신에게 잘했다란 위로를 하며 배에서 내렸다. 물론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는 멋진 고래 사진을 담아내지 못해 아쉬웠지만, 골드코스트의 풍경과 함께 수족관에서도 보지 못한 고래를 본 것으로 일단 80%는 만족했다. 모든 여행에는 늘 아쉬움이 남고 그것은 그다음 여행을 위한 몫이기에 오늘 남긴 20%의 아쉬움은 다음 여행을 생각하며 끝을 낸다. 다음번엔 더 멋지게 고래 사진을 찍어주리라 마음먹으며.
넓은 바다와 그 곳을 뛰어노는 고래, 그리고 그의 친구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고래 투어, 골드코스트도 좋지만 허비베이(Hervey Bay)에서도 참여할 수 있으니 참고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