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떼목장을 추억하며
강원도 대관령 양떼목장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난 포스팅이 제법 느린 편이다.
가끔은 너무 느려서 결국엔 공개로 돌리지 않고 중도에 멈춘 비공개 포스팅이 있기도 하고
사진만 골라 놓고서 볼 때마다 이건 해야 하는데 하는데 하며 숙제처럼 고뇌하게 하는 그런 포스팅도 넘쳐난다.
오늘 이야기하는 양떼목장은 그런 숙제 거리 중에 하나다. 언제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면 꽤 옛날.
그냥 지나간 이야기로 묻어둘까 했더니 폴더를 열 때마다 저 양이 순수한 눈망울로 매번 쳐다보는데
그게 왠지 모르게 미안해서 폴더를 지우지 못하고 그냥 두길 꽤 오랜 시간.
결국, 시간은 엄청 흘러버렸지만, 주변에 양떼목장을 다녀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이때다 싶어서 꺼내 놓는다. 그러니 양아, 이제 그런 눈으론 그만 쳐다봐주렴?
이름 참 재미났던 어느 투어 회사의 패키지 여행
믿기진 않지만, 이건 거의.... 몇 년 만의 국내여행이었다.
지금이야 뉴질랜드고 캐나다고 호주고 남들은 가 보지도 못한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난 여행을 사실 그다지 즐기는 편도 아니고 사는 게 바쁘단 핑계로 여행의 묘미는 이미 접어두고 산 지 오래였다.
이번 여행은 순전히 그 당시만 하더라도 급 친해진 옥여사의 제안 아래 그냥 '저렴'하고
'한 번쯤 가 보고 싶었으니까' 하는 이유로 함께하게 된 것이다.
썬모래투어인가 하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의 패키지 여행에.
이왕이면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차피 겨울이고 추울 테니 눈이라도 많이 오면 왠지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단 그런 생각에.
그렇지만 신발 속 두꺼운 양말이 눅눅해져 오면서 내가 무슨 기대를 한 것인가 좌절하기까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이 와서 뽀독뽀독 소리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가 이내 축축하게 젖은 발이 얼기 시작했다. 아..놔..
눈 쌓인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다는 것
양떼목장에서 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산책로를 걷거나 양에게 건초를 주거나.
우린 산책로를 먼저 걷고 내려오면서 양에게 건초를 주기로 했다. 원래 재미난 건 뒤에 해야 하는 법.
▲ 중요한 말은 늘 마지막에..
그런데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산책로를 둘러보는데 소요시간이 약 40분이란 사실을. 이 판넬을 찍을 때도 마지막에 적혀 있던 문구는 읽지 않았던 듯 하다.
신 나게 뽀독뽀독 거리며 출발한 산책은 양말이 젖고 발은 얼어오고 길은 미끄러워 비틀거리면서
점점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는 기분으로 변했다.
▲ 아이젠을 지참한 산책이라니..
이...이런거였나. 월동장구가 있는 분만 산책이 가능한 그런..?
아마 눈이 많이 왔을 때 붙은 경고문인듯 보였는데 이날도 해당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전날 내린 눈이 해가 쨍~하게 뜬 맑은 날씨에 녹기 시작하면서 길이 질척질척 미끄러웠기 때문에.
여기가 바로 대관령!
그렇게 몇 번 넘어질 듯 아슬하게 발걸음을 이어가며 조금씩 길에 익숙할 때 즈음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지리를 공부하던 그 시절의 책 속에서 익혔던 그 대관령이 여기였다.
그 때 배운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씨감자의 주산지이며 고랭지 채소(!), 목축업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영화 러브 레터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お元気ですか~~~私は元気です~~~~
영화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도 떠 오르는 듯 하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러브스토리 OST를 불러보면 대충 맞다;)
도시의 찌든 때에 얼룩덜룩 시커먼 눈만 보다가 이렇게 뽀오얀 눈을 보니 어찌나 좋은지.
눈을 탁 트이게 하는 이 풍경은 눈에 끼인 스트레스란 먼지까지 날릴 만큼 시원했다.
보라, 이게 태백산맥이고 여기가 대관령이다.
붓 하나 손에 쥐고 수묵화를 그려나간다는 기분으로 허공에 살살 산등성이를 따라 손을 휘저으며
노랫가락이 절로 울러 퍼질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멋지게 그림을 그려 내려가 본다.
멋지다. 한국은 이렇게나 멋진 풍경을 가졌음을 또 한 번 감탄한다.
▲ 여러분들의 사랑은 아직도 영원하신지..
산책로의 정점은 나무로 만든 이 오두막에서.
이날은 유난히 많은 관광객이 찾은 터라 작품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고 안에 슬쩍 들여다보는 걸로 만족했다.
어딜 가도 자신들의 사랑을 뽑내고자 하는 이들은 많다 보니 여기저기에 훈장처럼 많이도 새겨놨다.
이 오두막은 그들의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으면 진작에 불타 없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오두막을 바라보는 이런 쓸쓸한 솔로 나무도 있고..
보라, 질투와 스트레스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지 않았는가.(?)
▲ 건초를 향한 이빨 미소
그렇게 즐겁고 힘겨운 산책을 마치고 양들을 만나러 왔다.
투어 버스에서 티켓을 나눠주면서 건초 체험할 때 교환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건초체험은 정말 딱 한 번에서 끝났다.
그리고 순하디순한 양이 밥을 먹을 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식욕을 드러내는 것 또한 처음 알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고이 먹는 그 모습을 찍고자 했던 바람은 건초가 든 바구니를 들고 서는 순간부터
빨리 내놓으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양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양은 바구니마저 씹어 먹을 기세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양은 좀 꾸질꾸질 했지만, 그래도 참 순한 동물이긴 했다.
햇볕이 드는 우리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같이 양이라도 세며 잠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 너네도 저렇게 커지는 거니?
그중에서도 새끼 양은 어찌나 귀여운지.
엄마아빠 양의 거대한 몸과 비교해서 보고 있자면 저 귀여운 양이 저렇게 우람해질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리고 호주에서 양털 깎기 쇼를 보고 나서야 새끼 양과 부모 양의 크기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몸은 엄청난 양의 털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양은 곱슬기가 심해 참 풍성한(?) 동물이었다.
▲ 앙. 맛난건가?
▲ 이거 뭐야. 맛없어...
이때만 하더라도 호주로 떠나기 전이었던지라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양을 볼 수 있을지 몰랐는데 말이다.
뉴질랜드 여행을 할 땐 정말 사람보다 더 많은 양을 보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 볼 양을 한 번에 다 본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 같은 각도, 다른 느낌!
어쨌든 TV에서만 보고 언젠가 가 보고 싶어 했던 양떼목장을 가고 직접 양을 봤으니 여행은 참 즐거웠다.
새벽부터 일어나 투어 버스를 타고 정신없이 자다가 도착한 양떼목장의 눈 내린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멋졌다.
어쩌면 그 이후로 '여행병'이 도져서 그렇게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의 매력을 알아버렸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테니.
▲ 베스트 포토제닉 양
▲ 이 양을 세다 보면 당신은 잠에 빠져듭니다..
한참 양을 보고 있으니 때마침 관리인 아저씨가 등장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아저씨의 설명대로 머리를 양 갈래로 예쁘게 동여맨 양이 가장 순하딘 순한 아이였던지라 사진도 제일 예쁘게 찍혔다.
가끔 여행하다 보면 이런 가이드북에도 없는 팁이 재미나기도 하다.
이 여행을 함께하자고 말했던 옥여사는 이번에도 양떼목장에 다녀왔다.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가졌더니 포스팅으로 화답하는 그녀의 염장에 다시한번 무너진다.
여행이 가고 싶어진다. 저 먼 곳이 아니더라도 국내 여행부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눈앞에 놓인 과제가 산더미라 훌훌 떠나버릴 수 없기에 다녀왔던 곳의 사진들을 훑어보며 마음을 달래지만,
포스팅하다 보니 또 가고 싶어진다. 아.
이 여행은 2012년 겨울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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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 Panasonic GF-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