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딸기농장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끝내던 날..
호주워킹홀리데이 딸기농장의 실태까지는 밝히지 않는 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12개월 동안 대략 4개월은 랭귀지스쿨을 다니며 놀았고,
4개월은 딸기를 팩킹했고 4개월은 호텔에서 하우스키핑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외국인 친구들과 맥주를 부딪치며 영어를 쏼라쏼라하는 것이었지만,
실상의 호주워킹홀리데이는 늘지 않는 영어, 구하기 힘든 아르바이트, 그 속의 외국인 노동자였다.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호주 딸기농장의 실태가 나오기도 했다는데
일할 때만 하더라도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환경이!란 생각도 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써보자, 호주워킹홀리데이의 외국인 딸기팩커의 삶을.
딸기농장의 헤어짐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마지막 날, 딸기농장 총 책임자(슈퍼바이저)에게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딸기 농장에서 내가 맡은 일은 팩킹, 절친 우쿠가 맡은 일은 팩킹된 딸기를 크기별로 구분하는 것으로
생산되는 딸기 양에 따라서 그 날의 일이 정해지는 정말 출퇴근 시간이 불분명한 그런 일이다.
초반에는 너무 일을 일찍 마치고 딸기의 양도 적어서 모이는 돈이 하나 없었지만,
딸기 시즌이 되자, 정말 하루에 7~8시간을 가뿐히 넘길 정도로 오랜 시간을 일하고 돈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딸기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이 일은 그대로 끝났고! 그 딸기 시즌의 끝은
40여 일 만에 드디어 쉬겠다고 휴가를 낸 그 날,하늘에서 내린 우박으로 딸기가 망가지면서 끝났다.
내일부터 딸기를 팩킹하러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마스터 동생의 전화를 받고서 정말 거짓말인 줄 알았다.
▲ 외국인 노동자에 어울릴 법한 건물..
▲ 쉬는 시간엔 늘 북적하던 곳
어째서 딸기농장이었나?
처음엔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농장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영어를 늘리는 게 목적이었으니 당연히 도시에서 외국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나 호주의 물가는 생각보다 비싸 한국에서 가져온 돈은 금세 바닥이 나기 직전이었다.
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밀려들면서 브리즈번을 찾아온 학교 후배의 도움이 운 좋게 겹쳐지며 농장으로 가게 된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세컨비자(워킹홀리데이 1년 연장)를 따기 위해서는 농장 같은 곳에서 88일을 일해야 하기에
지금이라도 준비해두면 나중에 세컨비자가 필요할 때 바로 신청하기 편할 것 같았다.
▲ 브리즈번에서 한시간 정도 걸린다
▲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출근기록부
브리즈번 딸기농장의 메카(?), 카불처(Caboolture)
내가 일한 곳은 딸기농장 몇 곳이 몰려있는 카불처라는 곳이다.
브리즈번 도심에서 약 1시간을 달리면 있는 곳인데 한적한 시골 마을인지라 그다지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오로지 딸기농장에서 일하기 위해서인데 이 작은 마을에 한인마트가 있단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 대만인이 오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듯.
호주나 서양권의 사람들과 달리 이 농장(이라고 적고 공장이라고 봐야하는)의 대부분의 아시아 일꾼들은
2~3명의 한국인 컨트랙터의 손에 의해서 관리가 된다. 이곳에서 하는 건 오로지 딸기를 따고(픽킹) 싸는 것(팩킹).
그 단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 세컨 비자를 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몇몇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그냥 묵묵히 일한다.
▲ 대만 아이들이 늘 이곳을 채우곤..
딸기농장의 타임테이블?!
일이 없을 땐 하루에 3~4시간만 일하기도 했고 시즌일 때는 하루에 10시간 일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2, 3시간에 한번씩 쉬는 시간 10분을 가지고 점심시간은 30분.
지금 생각해보면 노동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짧게 쉬었는데 그땐 딸기를 많이 싸겠다는 의지에 불타
짧은 쉬는 시간을 크게 개의치 아니했던 듯도 하다. 물론 나중엔 싸는 것보다 쉬는 것이 더 좋았지만.
▲ 한번도 1등을 하지 못했다.
딸기농장에도 석차가 있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1주일이 지나고 나면 벽에 그 주의 기록을 정리한 종이가 붙었다.
자신이 일한 양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이유였겠지만, 사실 잘하는 아이들은 팩킹을 이만큼 한다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늘 자기 기록을 확인하고 나면 가장 많이 싼 사람은 누구인가를 찾아봤으니 말이다.
팩킹은 판넬이라고 불리는 정사각형의 통 하나를 싸면 당시엔 17센트를 받았는데
그냥 들어선 그다지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엔 어설프던 실력이 딸기 시즌이 될 때 즈음해선 빨라져
한 시간에 100개를 싸며 시급 17달러(약 만 육천원)를 버는 셈이 되니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다만 이건 개인차가 있서 17달러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덜 버는 사람도 있다.
난 중간 정도의 기록이었지만, 왜 이렇게 못 쌀까 늘 자괴감에 빠져있곤.. (딸기 따위에...)
▲ 딸기를 싸러 들어가기 전엔 꼭 손을 씻어야 한다
위생 관리 하나는 정말 철저하게!
아무래도 딸기도 먹는 상품이다 보니 농장에서도 위생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늘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게 보호망을 써야 하고 팩킹을 하러 가기 전엔 손을 깨끗하게 씻고 소독해야 했다.
어디서 봐도 눈에 띄는 형광 조끼는 유니폼처럼 착용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게 갖추어지면 본격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 ㅠㅠ
▲ 딸기보다 훨 쉬어보이는 파인애플 팩킹
딸기농장이여 안녕~
딸기시즌은 우박과 함께 끝나버리고 늘 팩킹하는 이들로 꽉 차 있던 공간이 텅텅 비어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 농장은 딸기와 파인애플, 망고도 다루는지라 딸기는 끝났지만, 반대쪽에선 여전히 파인애플을 팩킹하고 있었다.
파인애플은 딸기와는 달리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라 일하는 이들도 다 호주사람들.
파인애플 팩킹을 한창 감독 중이던 농장 총괄 슈퍼바이저에게 이제 카불처를 떠난다는 인사를 건넸다.
자신을 다시 찾아온 것이 고마웠는지 어쨌는지 여태껏 본적 없는 엄마 미소(?)와 띄며 다음 시즌에도 오란 이야기도 덧붙이더라.
세컨비자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이 농장을 다시 가는 일은 없었지만,
지금 다시 가면 또 그때만큼 열심히 딸기를 팩킹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딸기농장에서 한 이 단순노동은 내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4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든 쉬운 게 없단 생각과 어떤 일을 하더라도 '프로답게'란 생각으로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불합리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있단 걸 몸소 깨달았달까.
분명 좋은 환경도 아니고 돈을 엄청나게 번 것도 아니었지만, 지난 일이 되니 이것도 추억이 되어버렸다.
힘든 기억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것만 조금 더 곱씹는게 속이 편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면... 페스티벌(딸기 품종 중에서 가장 싸기 편하다)을 쌀 차례가 되었을 때?
워킹홀리데이 농장사전
1. 카불처 : 브리즈번 근교에 위치한 딸기농장이 많은 농촌(?)지역
2. 컨트랙터 : 관리감독의 일을 하는 사람. 계약직으로 시즌에만 일을 한다는 말이 있으며 욕 많이 먹는 직업;;
3. 농신 : '농장의 신'의 줄임말. 독보적으로 농장일을 잘하는 사람을 일컫으며 농장 일로 1억을 번다는 전설같은 사람들.
4. 농장을 탄다 : 말그대로 농장일을 하는 걸 말함. 시즌에 맞추어서 농장을 바꾸어가며 일하는 이들도 있음.
5. 농장계의 사무직 : 딸기팩킹. 앉아서 줄기차게 팩킹만 하기 때문인데 농장 작물 중에서도 비교적 쉬운 편.
6. 구황작물 : 농장일 중에서 가장 빡시다고 함. 감자, 대파, 오이, 양파..
7. 망고 : 한국 사람 거의 대부분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8. 바나나 : 픽킹하는 곳이 거의 수풀이라서 뱀에 물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9. 캥거루 주머니 : 오렌지와 같은 과일을 딸 때 사용한다.
10. 세컨비자 : 워킹홀리데이 기간을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정해진 곳에서 88일을 채워야 기본적인 신청 조건이 된다.
돈으로 사고 파는 인간들도 있으나 염연히 불법이다.
11. 농장연애 : 사내연애의 농장판
12. 호주 농장정보 관련 사이트 : http://www.jobsearch.gov.au/harvesttrail/
딸기 팩킹하면서 발견했던 독특한 딸기들 : http://sinnanjyou.com/149
딸기 시즌이 끝나고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카불처의 백패커 : http://sinnanjyou.com/135
2012년부터3월부터 2013년 2월까지의 호주워킹홀리데이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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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 Panasonic Lumix Lx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