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를 데리고 왔다
뭘 해야하지
얼마 전부터 지인 옥여사 인스타그램에 길냥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랜선집사 1인 나의 관심을 잡은 이 고양이는 어미와 함께 동네를 다니다 얼마 전부터 혼자서 있다고. 이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던 터라, '냥줍'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큰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이 고양이가 내가 갔을 때도 거기에 있다면? 2
너 내 동료해라! 응? 어디서 집사 나부랭이가 그런 말을 하느냐고?
빈손으로 떠난 무식한 냥줍러
냥줍의 경험이 없는 나는 너무나도 가볍게 신나게 '그냥 갔다.' 켄넬은 옥여사가 빌려주기로 했으니까 어찌 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인제야 말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게 제일 용감한 법이다.
냥줍 시 필요한 것 : 켄넬 혹은 이동장, 담요, 먹이, 장갑
그렇게 빈손으로 냥줍에 나선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본 그 작은 고양이와 마주하게 된다. 미리 본 유튜브의 냥줍 영상들과는 다른 경계심 가득한 새끼고양이. 슬슬 피하더니 어디론가 폴짝 숨어버렸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냥
데리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할 때 연락을 받은 옥여사가 켄넬과 먹이를 들고 나왔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돌아섰어야 했을지도. 몇 번 밥을 준 옥여사를 기억하는 것인지, 먹이가 든 봉지를 내려놓자 차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가 조심스레 나와 경계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고파서 어쩔 수 없었다냥
맨손으로 잡기엔 그냥 보아도 경계가 심해 켄넬 안에 먹던 먹이를 넣어 두고 잠시 지켜봤다. 먹이 맛을 본 덕일까, 의심도 하지 않고 먹이를 먹으러 켄넬 안으로 들어가는 고양이 녀석. 몸이 다 들어갔을 때 켄넬 문을 닫아 버리고 그제야 자신의 상태에 흥분하기 시작하는 고양이 녀석.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23만원에 흥분한 순수한 냥줍러
환묘를 반겨주는 병원 안내묘
켄넬을 담요로 싸들고 근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켄넬을 본 수의사 선생님이 물어왔다.
"핸들링은 되나요?"
"(핸들링은 무엇인가..손으로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글쎄요.."
"핸들링도 안되는데 어떻게 검사를 하겠어요?"
"(아, 그런건가....)"
지X발광을 시전중
선생님은 두꺼운 장갑을 끼고 켄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자신이 잡혔다는 사실을 인정 못하던 고양이는 날뛰기 시작하고 선생님은 다시 집어넣으시고 조용히 주사를 가지고 오셨다. 그렇게 앞날을 모르고 날뛴 새끼고양이는 '진정제'를 맞게 된다. 나도 못 맞아본 거란다.
10분 뒤 약 기운이 돌면서 힘이 빠지자 본격적인 검진이 시작되었다.
진정제에 얌전해진 길냥이
익숙한듯 환묘를 바라보는 중
병원에서 검사한 것 : 기생충검사(귀진드기검사), 예방주사, 파보검사(범백검사), 피부검사
기초 검사를 받고 나서 결론은 '곰팡이로 인해 털이 빠진 약간의 피부병' 외엔 건강하다는 결론. 길고양이들이 많이 가진 귀 진드기나, 범백도 음성이니 꽤 건강한 고양이었던 것. 3
진정제의 효과로 집에 갈 때까지 얌전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소중한 교훈
15일 치 피부병용 내복약(사료에 섞어서 먹이라고)과 바르는 약을 얻었다. 그리고 검사+치료비 23만 원도 함께.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한 생명을 데리고 가는 일이라 돈이 많이 나간다고 생각했지만, 만난 지 1시간도 안 되었는데 23만 원이라니. 소개팅치고는 꽤 비싼 밥값을 냈다. 그러니 애프터신청도 잘 받아주지 않을래?
안녕, 쫄보냥이! 안녕, 쫄보집사
진정제와 포획의 충격에 가련함 폭발중
데리고 온 고양이와 하룻밤을 함께했다. 함께 보내는 첫날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 녀석이 야옹야옹 운 것도 한몫했지만, 그렇게 눈을 떴을 때 저 고양이가 내 침대에 올라와 불꽃싸대기를 날리지 않겠냐는 공포감이 들었기 때문. 새끼 고양이에게 무슨 공포감인가 하면서도 그 야심한 밤에 우는 소리를 듣다 보니 별별 상상이 다 되면서 잠들기가 어려웠다.
본능을 못 이기고 밥을 먹기 시작(고맙습니다)
아침에 켄넬 안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이것이야말로 쫄보들의 만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냥이와의 동거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쫄보집사다 보니 하루하루 내가 잘한 게 맞는지, 되려 밖에서 자유로운 낭묘로 사는 걸 원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진 반려묘 커뮤니티에 있는 분들처럼 '내 새끼'란 감정도 크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괜한 오지랖이었을까 하는 의문. 그럴 거면 왜 데리고 왔냐고 따져 묻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뉴스에는 꾸준히 동물학대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날은 점점 추워진다. 잔뜩 경계하며 쳐다보는 조그만 그 녀석은 지나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전봇대 아래에 그 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았을 거다. 그리고 지금은 쫄보집사가 되어 함께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어미가 버린 작은 고양이, '남이'는 평범한 어느 날 내게 왔다.
사족
이름은 '남이', 성별은 수컷(으로 추정)
냥줍이라고 하기엔 발버둥이 심해 냥납치 혹은 냥이구조라 하여 '냥구'
반려동물과의 즐거운 삶보단 초보집사의 현실적인 반려생활을 소개하는 일이 많아질 듯
정보
글쓴이 : 신난제이유
카메라 : iPhon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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