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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악, 딸기밭 사태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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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악, 딸기밭 사태의 날
호주워킹홀리데이 딸기농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어느 날


앞서 딸기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훈훈하게 적어 내려갔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추억들은 다 경험이 되고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육체노동과 단순노동이란 게 여태껏 해오지 않은 사람에겐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험하지 않으면 모를 거다.

딸기농장일은 '농장 계의 사무직'이라고 불릴 만큼 앉아서 팩킹만 하면 되는 일이기에 어려울 것이 없지만,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이야기는 그것과 별개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딸기밭 일'이다.


관련포스팅 : 호주 딸기농장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끝내던 날..



무언가 팔려가는 기분이...


딸기농장에서 일하게 된지 한달 즈음 되었을까. 
그날은 딸기를 팩킹하는 곳이 아닌 딸기밭으로 나오란 이야기를 듣고 집을 나섰다. 그것도 아주 이른 새벽에 말이다.
당시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딸기농장이 있는 카불처가 아닌 다른 곳에 살았기 때문에
아침마다 한 시간씩은 일찍 출발해야 했는데 이날은 그런 연유로 새벽 5시쯤 눈을 떠야만 했다.




 여기가 어디인가, 경기도인가.


반쯤 수면상태로 도착한 딸기밭은 정말 공장(딸기 팩킹하는 곳)과는 사뭇 다른 '호주판 농촌'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이었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띄엄띄엄 초록으로 가득 찬 딸기밭이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고
나보다 늦잠을 잔 아침 해가 그제야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딸기밭


늘 픽커들이 따온 딸기를 열심히 팩킹만 했지 그 실체(?)를 직접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우박을 맞고 쓸모없어진 딸기밭에 제초제를 확 뿌려 누렇게 시들어 버렸다는 광경은 이야기로만 들었기 때문에
내게 다행히도 딸기판은 이렇게 싱싱한 푸름을 가진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아침 이슬을 받아 싱싱한 딸기를 보라!


물론 딸기밭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정확히 얼마나 큰 고통이 내게 찾아들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저 좋아서(딸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아침 공기와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싱그러움을 한없이 느끼기만 했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딸기를 그대로 몰래 따 입에 집어넣고서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말이다.



 대략 한 줄에 100m가 넘는 딸기밭


이윽고 우리가 이 딸기밭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만만찮은 일이 될 것 같단 직감이 들었다.
오늘 해야 하는 일은 '딸기가 잘 자라기 위해 딸기 모종의 위쪽과 아래쪽의 딸기잎을 2~3장씩 떼어 주는 것'으로
자라나는 딸기가 햇살을 잘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지만, 너무 많이 떼어내 버리면 강한 햇살에 죽어버릴 수 있다고 하니
나름 꽤 신중하게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아울러 딸기꽃을 떼어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딸기꽃이 딸기가 되기 때문!)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

 있어도 도움이 안되었던 도구


그렇게 설명을 듣고 모두가 일을 시작했다. 이들은 원래 팩킹을 하기 위해서 왔건만 왜 이러고 있는지..
오늘 하는 일은 1줄당 17달러 정도 받는 일로 처음엔 1줄에 2시간 정도 걸리더니 시간은 갈수록 느려졌다.
어찌나 딸기 모종이 많은지 게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맨손으로 딸기잎을 떼다 보니 여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자, 밥을 먹으러

 분주하게 준비해서 싸온 주먹밥

 실수로 떼어 버린 딸기꽃


끙끙거리면서 그렇게 몇 시간을 일했을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몇 시간을 딸기밭에 쪼그려 앉아서 일했건만 점심시간은 3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허겁지겁 주먹밥을 입에 털어넣고 옷이 더러워지는 건 이미 안중에도 없이 딸기밭 옆의 도랑에 그냥 누워 버렸다.
온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고 서늘한 땅의 기운이 기분이 좋아짐도 잠깐 다시 일을 해야 하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꿀 같은 휴식의 뒤엔 그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와 정말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온 몸 가득 늘러 붙었다.



 저녁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딸기밭..;ㅁ;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더 이상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되자,
더 이상 허리가 아파 쪼그려 앉지 못하고 무릎으로 기어 다닐 정도가 되자 일이 마무리되었다.
나이 어린 대만 아이들은 아주 쌩쌩하게 날아다녔지만, 나는 거의 워홀 막차를 탄 왕누나(?)였기에
10시간 넘게 딸기밭을 기어 다닌 결과 몸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다.



 작품명 : 노동자의 손

 작품명 : 노동의 결실


일을 끝내고 나서 손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를 깔짝거리는 정도가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었던 것.
농부아저씨의 노고를 생각해서 쌀 한 톨이라도 아껴 먹으라던 그 이야기가 그날따라 어찌나 눈물겹게 와 닿던지..
손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차에 몸을 싣고 돌아가는 길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절실하게 소망했다.



 딸기잎을 따고 딸기를 싸며 땀 흘려 모은 돈


다음 날 팩킹을 하러 온 아이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호주 슈퍼바이저는 좀 싫어했던 듯하다.
그 덕분인지(?) 이후론 원하는 사람만 나가서 일하는 걸로 바뀌었고 난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내가 한 푼 더 벌겠다고 몸을 혹사하다간 허리디스크와 손목디스크를 갖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았기에.

어쨌든 이날의 기억은 정말 내 워킹홀리데이 인생에서 가장 손꼽는 '고통스러운 날'이었던지라
다시는 밭일을 얕보지 않겠다, 노동법이 왜 이따구냐 등의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도 인생에 큰 경험이 되었다.
육체노동, 그거 진짜 아무나 하는 일 아니더라.


사족_ 얼마 전에 염전에서 노예 부리듯 일을 시킨 사람이 있던데 정말 그러지 말자.
자기가 직접 그렇게 일하지도 못할 걸 왜 남을 시키냐고. 아주 나아아아쁜 사람이야 진짜.



2012년부터3월부터 2013년 2월까지의 호주워킹홀리데이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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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 Panasonic Lumix L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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